수도권 등 중부지방에 내린 80년 만의 폭우로 가뜩이나 높은 국내 소비자물가의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 6.3% 올랐다. 전월(6.0%) 보다도 상승폭이 확대된 것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달 물가 상승을 이끈 것은 에너지 가격과 개인서비스 물가다. 공업제품과 개인서비스가 물가 상승률 기여도는 각각 3.11%포인트와 1.85%포인트로 전체의 78.7%에 달했다. 공업 제품 중에서는 가공식품과 석유류가 각각 8.2%, 35.1% 올랐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물가가 9~10월 고점을 찍고 내려올 것으로 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추세로 보면 물가 정점이 이르면 9월인데, 추석이 있다 보니 일정 부분 상승 압력이 있을 수 있다”며 “물가가 9월 말, 늦어도 10월 정도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정점은 기본적으로 올해 3분기 말이나 4분기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폭염에 이어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큰 폭 오를 수 있어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추 부총리도 10월 정점을 예측하면서 “여기에는 러시아로 인한 유가 폭등이 없어야 하고 곡물 가격이 갑자기 나빠지지 않는다”고 전제를 달았다. 추가로 악화되는 변수가 있다면 정점 시점이 늦춰질수도 있다는 얘기다.
폭염, 폭우 등 이상기온으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에 농축수산물이 미치는 기여도도 높아졌다. 농축수산물 기여도는 6월 0.42%포인트에서 7월 0.62%포인트로 확대됐다.
과거 데이터를 봐도 여름철 폭우는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여름철 강수 집중은 농수산물과 같은 신선식품류의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00~2019년까지의 자료 자료를 대상으로 매월 소비자물가지수와 신선식품 물가지수의 6월 대비 9월 누적 상승률의 연평균 값을 계산해 본 결과 신선식품물가 상승률은 13.0%로 신선식품제외 물가 상승률(0.4%)과 소비자물가 상승률(1.0%)보다 크게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집종호우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채소류의 물가 상승이 전반적 물가 상승을 주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2000~2019년 동안의 채소의 전월비 월별 물가상승률 평균치는 6월 -6.7%에서 7월 6.1%에 이어 8월과 9월 10%를 기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아직 폭우가 언제 끝날 지 알수가 없고, 농작물 피해액수도 파악되지 않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여름철 집중 호우는 농수산물을 중심으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2020년의 경우 장마기간이 40~50일 정도 돼 물가 상승 압력이 컸지만 지금은 그 때만큼은 아니기 때문에 과거보다 상방 압력은 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추가적인 폭우 피해만 없다면 이번 폭우만으로는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전체적인 기상 상황이 안 좋아 농작물이나 식료품 공급 부진으로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미국 물가나 수입물가 상승세가 줄어들면서 조금 안정화 되고 있는 것은 사실 이지만 9월 추석 등이 남아있어 물가 불안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폭우가 일시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수는 있지만, 신선식품 물가 상승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낮은 등 정점 시기가 늦춰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노시연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폭우가 신선식품 물가를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고 국제곡물 가격도 안정되고 있어 정부 예상보다 고점이 빨리 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지난해 10월부터 물가상승률이 전년동기대비 3%대를 기록한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정점 시점이 10월을 넘어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전체 물가에서 농축수산물 물가 기여도는 0.6%포인트로 낮은편이기 때문에 많이 오르더라도 전체 물가지수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유가 등 공업제품 물가 기여도는 3.11%포인트로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최근의 유가하락 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에너지 가격 오름세가 주춤해 지면서 물가가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수입물가 상승, 전기료 등 공공서비스 물가 상승이 이어지고 있어 미국 보다 1분기 정도 늦게 정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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