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9일 기흥캠퍼스 R&D단지 기공식에서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삼성전자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처한 지정학적, 경제적인 위기를 기술 리더십으로 극복하고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뤄내야 한다는 의지 표명으로 풀이됐다.
● 복권 첫 행보, 역대 최대 반도체 R&D 기지에 20조 원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11시 반경 기흥캠퍼스에 도착해 경계현 반도체(DS)부문장(사장) 등 사장단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라인 인근 행사장에서 열린 기공식에 참석했다. 복권 이후 처음으로 생산현장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를 보기 위해 나온 직원들의 환영인사를 받기도 했다.
이날 기공식을 통해 처음 공개된 기흥캠퍼스 R&D단지는 삼성으로서도 역대 최대 규모인 약 10만9000㎡(3만3000여 평)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다. 2025년 중순부터 가동될 반도체 R&D 전용라인을 포함해 2028년까지 전체 연구단지 조성에 약 20조 원이 투입된다.
삼성전자는 기존 주력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에서 중국 등 후발주자의 추격을,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대만 TSMC와의 격차를 극복해야 하는 이중과제를 안고 있다. 6월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nm) 파운드리 공정 양산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수율 안정화와 고객사 확대까지는 험로가 남아 있다. SK하이닉스가 가져간 ‘업계 최고층’ 낸드플래시(238단) 타이틀을 되찾을 차세대 낸드 제품 개발도 숙제다.
이에 더해 최근 미국의 ‘칩4 동맹’ 요구 등 미·중 갈등의 지정학적인 위기 속에서 삼성은 앞서 수십 년간 쌓아온 공급망의 재편도 마주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복권 이후 첫 현장 경영 행보로 반도체 R&D단지를 택한 것은 이 같은 복합 위기 상황을 다시 한번 초격차 기술력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기흥캠퍼스 R&D단지에서는 반도체 초미세공정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신소재와 설계 구조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최첨단 장비를 조기에 도입해 시험 라인에 적용하는 한편 국내외 소재·장비·부품 분야 협력사들과의 R&D 연계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화성 반도체연구소 찾아 2년 만의 임직원 간담회
이 부회장은 이날 기공식을 마친 뒤 경기 화성캠퍼스로 이동해 임직원 15명과 소규모 간담회를 갖는 등 소통 행보를 시작했다. 이 부회장이 현장의 임직원들과 직접 만나 간담회를 가진 것은 2020년 8월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워킹맘 직원 간담회 이후 만 2년 만이다.
이 부회장은 다양한 직무 및 연령대를 가진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진 뒤 향후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점차 늘려 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어떠한 변화에도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직원이 “출근 전에 아내에게 ‘부회장과 단독 사진을 찍어오겠다’고 큰소리쳤다”며 기념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그러지 마시고 영상 통화를 한 번 하시죠”라며 직접 영상 통화를 하기도 했다. 간담회가 끝난 이후엔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6월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좋은 사람 모셔오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조직문화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은 화성캠퍼스 반도체연구소에서 DS부문 사장단 회의도 주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주요 현안 및 리스크와 차세대 반도체 기술 R&D 진척 현황, 초격차 달성을 위한 기술력 확보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그간 취업제한 등 여러 제약으로 주로 글로벌 기업 현황 점검, 해외 네트워크 정비 등 대외적인 업무에 주력해왔다면 이제는 공식적으로 경영에 복귀해 삼성 내부의 조직 정비와 현안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첫날 반도체와 기술개발, 직원과의 소통을 강조한 행보를 공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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