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 역대 최대]
8월 무역적자 94억7000만달러
14년만에 5개월 연속 적자
유가-환율 급등, 실질소득 감소
지난달 무역수지 적자가 100억 달러에 육박하며 월간 기준 최대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5개월 연속 적자 행진도 이어갔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 복합위기가 본격적으로 한국 경제를 짓누르며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8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무역수지는 94억7000만 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이는 1956년 무역 통계 작성 이후 66년 만에 최대 규모다. 올해 1월 경신한 역대 최대 적자(49억 달러)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1∼8월 누적 적자도 247억2000만 달러로 역시 66년 만에 최대다. 무역수지는 올 4월 24억8000만 달러 적자를 시작으로 5개월째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5개월 연속 무역적자는 2007년 12월∼2008년 4월 이후 약 14년 만이다.
수출이 22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지만 수입이 더 크게 늘면서 적자 폭이 커졌다. 지난달 수출은 566억7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6.6% 늘었다. 반면 수입은 1년 새 28.2% 증가한 661억5000만 달러였다. 수입 증가율은 지난해 6월 이후 15개월째 수출 증가율을 웃돌았다.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환율까지 가파르게 뛴 게 무역적자 확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원유, 가스, 석탄 등 에너지원 수입액만 185억2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91.8% 급증했다. 하지만 한국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이 26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고, 수출의 또 다른 버팀목인 대중(對中) 수출도 1년 전보다 5.4% 줄었다.
치솟은 에너지 가격과 환율로 무역 손실이 역대 최대 규모로 커지면서 국민들의 지갑은 더 홀쭉해졌다. 국민들의 실제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올해 2분기(4∼6월) 전 분기보다 1.3% 감소했다.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생산 소비 투자 등 내수지표도 일제히 둔화되고 있어 올 하반기 경제성장률도 크게 꺾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금융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7.3원 급등(원화 가치는 급락)한 1354.9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2009년 4월 28일(1356.8원) 이후 13년여 만에 가장 높다.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2.28%, 2.32% 급락했다.
반도체마저 26개월 만에 수출 감소… 對中무역도 4개월째 적자
8월 무역적자 94억달러 역대 최대
주력 반도체까지 수출 7.8% 줄어 에너지-산업 중간재 수입은 급증 “올 무역적자 500억달러 달할듯” 최대 교역국 中과의 무역도 고전, 4개월 연속 적자는 30년만에 처음
한국의 무역수지가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한 것은 국내 주력 품목인 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제품 수출마저 부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이 대부분 수입해야 하는 원자재 가격의 급등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이와 더불어 지난 수십 년간 최대 수출시장으로 자리매김하던 중국과의 무역 역조가 매우 심각한 양상이다. 주요국의 경기 부진과 동절기 에너지 수요 증가 등으로 무역적자가 앞으로 더 늘면서 연간 적자 규모는 역대 최대인 5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수출 효자 반도체, 26개월 만에 수출액 감소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8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15대 주요 품목 중 9개 품목의 수출이 전년 대비 줄었다. 특히 반도체는 전년 대비 7.8% 감소하면서 2020년 6월(―0.03%) 이후 26개월 만에 줄었다. 중국의 경기 둔화, 전 세계 고물가 현상, D램 등 반도체 공급 과잉 등이 겹친 탓이다.
반도체 수출은 올 3월만 해도 38% 급증했지만 증가 폭이 급격히 줄어 7월에는 한 자릿수(2.1%)로 쪼그라들었다. 반도체 외에도 컴퓨터(―30.0%), 무선통신기기(―20.7%), 디스플레이(―5.7%) 등 ICT 품목 수출이 모두 급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재고 자산이 불어나는 등 반도체 시장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올해 남은 기간에도 반도체 수출의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수출이 부진한 반면에 에너지와 산업 중간재 등의 수입은 대폭 늘었다. 석탄 석유 가스 등 3대 에너지 수입액이 전년 대비 91.8% 올랐고 수산화리튬, 니켈-코발트 수산화물을 포함한 정밀화학원료(82.8%) 수입도 크게 증가했다.
○ 對中 무역수지도 30년 만에 4개월 연속 적자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대한 수출도 줄어들고 있다. 8월 대중 수출액은 131억3000만 달러로 5.4% 감소했다. 수출이 주춤한 반면에 반도체, 정밀화학 분야의 중간재를 중국으로부터 대부분 수입하면서 8월 대중 무역수지는 3억8000만 달러 적자로 나타났다. 올해 5월(―10억9000만 달러)부터 8월까지 4개월 연속 적자다. 대중 무역수지가 4개월째 적자를 보인 것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다.
이 같은 현상은 양국의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 기술력을 키우면서 한국을 많이 따라왔고 중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매력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원자재 덕을 보며 의존도를 지나치게 높여온 게 무역적자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산업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1000만 달러(약 135억 원) 이상 수입품 중 특정 국가에서 전체 수입액의 75% 이상을 들여오는 품목은 636개였는데 이 중 중국이 351개(55.2%)로 가장 많았다.
○ 에너지 소비 많은 겨울철…적자 폭 확대 전망
무역적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하반기에도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 둔화의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무역적자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중 갈등 등 교역 환경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예상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수입 규모는 더 확대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전체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500억 달러까지 치솟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56년 이후 역대 최대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겨울철 들어 원유 수입이 늘어나면 무역수지 적자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며 “수출처를 다변화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수출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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