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플레이가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등 최신 국내 영화들을 잇달아 독점 공개하고 있다. 그간 최신 영화들은 일정 기간 시차를 두고 IPTV,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의 2차 시장으로 넘어갔지만 이러한 ‘텀’이 완전히 사라졌다.
당초 OTT와 영화관은 관객 확보를 두고 경쟁자로 여겨졌는데, 그 벽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이후 영화 티켓 값 급등, OTT 플랫폼의 안착 등으로 영화관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이 다소 싸늘해진 상황에서 제작사·배급사가 영화관에서 채우지 못한 수익을 OTT로 메꿀 수 있다는 관측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플레이는 지난달 29일 영화 ‘한산’을 독점 공개한 이후 오는 7일 오후 8시부터 ‘비상선언’까지 독점 공개할 예정이다. 흔히 최신 작품들이 그렇듯 콘텐츠를 별도 구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로켓와우 가입자 전원에게 무료로 공개된다.
두 작품 모두 극장에서 개봉한 지 불과 한 달여밖에 되지 않았고, 심지어 현재도 상영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올여름 최고 흥행작으로 떠오른 한산이 곧바로 OTT로 직행했다는 점이 보다 눈에 띄는 점이다.
◆8월 박스오피스 1위 ‘한산’, 영화관 상영 중인데도 OTT 공개 왜?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 8월 한 달 동안 한산은 관객 수 약 480만명(매출액 점유율 31.9%)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비상선언도 약 203만명(점유율 13.6%)의 관객을 모으며 3위에 자리했다.
여름 극장가를 주도했던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 중 2편이 쿠팡플레이의 품에 안기면서 이같은 발빠른 움직임에도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사태 이후 신작 영화과 OTT와 영화관에서 ‘동시 개봉’한 전례는 있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 ‘서복’이 대표적이다. 당시 서복은 영화관 개봉과 함께 티빙에서 독점 제공됐다. 서복은 영화관 관객 수는 순익분기점(약 326만명)의 11% 수준인 38만명에 그쳤으나, OTT에서 수익을 일부분 회수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영화의 경우에도 지난 2020년 ‘원더우먼 1984’가 극장과 HBO 맥스를 통해 동시 개봉됐고, 디즈니도 다수의 오리지널 영화를 극장과 디즈니플러스에서 동시 개봉한 바 있다.
하지만 기존 절차대로 영화관에서 우선 상영됐던 영화가 상영이 진행 중인데도 OTT에서 공개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일각에서는 영화관 가격 인상 등으로 관객들의 기준이 높아진 만큼 흥행 성공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OTT 공개를 통한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에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되는 비상선언은 누적 관객 수가 약 204만명으로 손익분기점 500만명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산의 경우 누적 관객 수 약 708만명으로 손익분기점 600만명을 넘어서는 데 성공했으나, 전작이 역대 한국 영화 중 관객 수 1위(1761만명)를 기록한 ‘명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아쉬운 수준이다. ◆급변하는 콘텐츠 시장…“상영 영화의 OTT 공개, 다양한 계약 형태 일종일 뿐”
코로나19 등을 겪으면서 영화 제작 투자 계약의 트렌드가 보다 다각화된 상황에서 쿠팡플레이가 한산과 비상선언의 제작 투자에 참여했기 때문에 두 영화의 독점 공개가 빠르게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쿠팡플레이는 두 영화에 모두 투자사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독점 공개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개봉 영화의 OTT 공개 시점은 계약에 의해 사전에 결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가장 전통적인 계약 형태가 바로 영화관→IPTV→OTT 순의 공개 방식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콘텐츠 시장이 격변하기 시작했고, 특히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업체의 제작 투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OTT 독점 개봉, 동시 개봉을 비롯한 새로운 계약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산과 비상선언의 사례 또한 다양화된 계약 형태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쿠팡플레이 관계자는 “정확한 투자 금액이나 규모, 계약 내용 등을 공개하는 건 곤란하다”면서도 “극장에서 상영되는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 극장 쪽 배급사와는 일정 등에 대한 조율은 긴밀하게 진행해 독점 공개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떤 콘텐츠를 보고 싶을 때 쿠팡플레이부터 찾을 수 있도록 고객 만족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로열티를 키우는 게 저희의 기본 방향이다. 쿠팡 와우 회원 대상으로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최고 스트리밍 경험을 주고자 하는 방침”이라며 “그러다 보니 다양한 장르에서 많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번 한산과 비상선언도 그런 차원이고, 이외에도 쿠팡플레이만의 오리지널 작품을 여러 가지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콘텐츠 독점 공개, 쿠팡에도 득된다…아마존처럼 이커머스-OTT 시너지
제작자 입장에서 최신 영화의 OTT 공개가 수익 확보를 위한 안전 장치의 역할을 한다면 쿠팡플레이와 모기업인 쿠팡에게는 가입자 확보·유치를 위한 유인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쿠팡플레이는 경쟁 OTT와 달리 별도의 요금제가 있는 게 아니라 월 4990원의 쿠팡 와우 회원이기만 하면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쿠팡 와우 회원들에게 주어지는 부가적인 혜택 정도로 탄생했던 것. 하지만 지속적인 콘텐츠 업데이트로 쿠팡플레이라는 OTT만의 경쟁력도 충분히 갖추게 됐고, 되려 쿠팡플레이가 모태인 쿠팡 가입자를 끌어모을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 기업의 선두주자인 미국 아마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마존의 프라임 멤버십 혜택으로 포함된 OTT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아마존의 후광에 힘입어 세계 2위 OTT로 성장했다. 이같이 성장한 OTT와 모태인 이커머스 플랫폼이 시너지를 내며 아마존의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이끌어냈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전문가는 “OTT의 가장 핵심적인 킬러 콘텐츠는 영화나 드라마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부분에 투자를 하지 않고서는 OTT 업계에서 살아남기 어려운데 쿠팡도 최근 스포츠 중계 등을 통해 시장 잠재력을 본만큼 중장기적으로 투자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쿠팡이 아마존의 모델을 많이 참고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마존도 ‘아마존 프라임’ 등으로 가입자를 락인(Lock-in)시키기 위해 영화·드라마에 꾸준히 투자를 하고 있다. 쿠팡 또한 향후 콘텐츠 투자를 확대하자는 판단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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