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국행(行)이 임박하면서 그동안 주기적으로 나왔던 삼성의 팹리스 기업 ARM 인수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독과점 문제와 최소 50조원이 넘는 비싼 몸값 탓에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지만 일부에서는 인텔 또는 다른 반도체 업체와 컨소시엄(연합체)을 꾸리는 공동 인수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영국에 본사가 있는 ARM은 컴퓨터의 CPU와 스마트폰 두뇌로 불리는 AP칩 설계 핵심 기술을 보유한 반도체 업계에서 독보적인 IP(지적재산) 판매 업체다. 삼성이 ARM을 인수하면 반도체 업계 판도를 바꿀 그야말로 빅딜이다. ARM 주인은 손정의 회장이 이끌고 있는 소프트뱅크(소프트뱅크 75%, 비전펀드 25%)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르면 추석 연휴 기간 ‘2030 부산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영국을 방문한다. 영국 방문 기간에 영국 총리 및 국제박람회기구(BIE) 인사를 만나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영국 방문을 계기로 해외 현장 경영도 재가동할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그동안 삼성전자의 인수 대상 목록에 꾸준히 올랐던 ARM이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어 이 부회장의 동선에 관심이 집중된다.
앞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열린 가전 전시회 ‘IFA 2022’에서 기자들과 만나 “(M&A와 관련해) 기존 사업이나 미래 성장동력을 갖추기 위해 광범위하게 보고 있고 많은 진척이 있었다”며 “업종과 회사를 밝히진 못하지만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탄도 충분하다. 삼성전자의 지난 2분기말 연결 기준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124조원에 달한다. 차입금을 뺀 순현금도 107조9100억원이다.
특히 시스템반도체 강화를 내세운 삼성전자가 ARM을 인수하면 시너지를 크게 높일 수 있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AP인 엑시노스 프로세서도 ARM 설계를 기반으로 생산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삼성전자의 ARM 단독 인수는 쉽지 않다. 당장 독과점 우려가 걸린다. 앞서 ARM 인수를 추진했던 엔비디아도 독과점을 우려한 주요국의 반대로 실패했다. 삼성전자 역시 메모리 반도체 1위, 파운드리 2위의 시장 지위를 고려할 때 독과점 문턱을 넘기 힘들다는 평이다.
몸값도 부담스럽다. 소프트뱅크가 엔비디아에 ARM을 매각하려 했을 때 가격이 400억 달러(약 54조8400억원)였다. 삼성전자의 연결 기준 순현금이 100조원을 넘지만 본사(별도 기준)가 보유한 현금은 16조원이다.
일부에서는 공동 인수 가능성을 거론한다. ARM 인수전 참여를 선언한 SK하이닉스도 컨소시엄 구성을 전제로 두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올해초 “ARM은 한 회사가 인수할 수 있는 기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전략적 투자자들과 함께 컨소시엄으로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언급했다.
해외 언론도 삼성전자와 인텔이 ARM 공동 인수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시장 조사 업체인 엔드포인트테크놀로지어소시에이츠는 지난달 30일 이 부회장과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만났을 때 ARM 공동 투자에 대해 논의했을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ARM은 한 기업이 단독으로 인수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삼성전자가 인수전에 참여한다면 인텔 또는 다른 기업과의 컨소시엄 구성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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