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전세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금액이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최근 집값 하락으로 전세가가 매매가를 웃도는 ‘깡통전세’가 속출하고 신축 빌라를 중심으로 전세 사기가 잇따르며 세입자 피해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12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8월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전세보증보험) 사고 건수는 511건으로 사고 금액은 1089억 원으로 나타났다. 월간을 기준으로 사고 건수와 금액이 각각 500건, 1000억 원을 넘은 것은 관련 실적을 집계한 2015년 이후 6년여 만에 처음이다. 이 보험은 세입자(가입자)가 전세계약 만료 후 집주인에게 전세 보증금을 못 받으면 HUG 등 기관이 대신 지급(대위변제)해 주고 추후 집주인에게 청구하는 상품이다.
특히 올해 1∼8월 보증 사고액은 총 5368억 원으로 지난해 전체 사고액(5790억 원)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깡통전세’ 피해 75%가 2030… “보증보험, 특약에 넣어야”
8월 못 돌려받은 전세금 1089억 보증보험 사고액 8월까지 5368억 작년 전체액 육박… 역대최고치 전망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도 늘어나
서울 종로구 전용면적 59m² 신축 빌라에 사는 직장인 전모 씨(38)는 전세 만료 6개월을 앞두고 속이 타들어 간다. 새로 바뀐 집주인과 연락이 두절돼 등기부등본을 떼어 보니 집주인의 세금 체납으로 전셋집에 압류가 들어와 있었다. 그는 “아이가 생겨 이사 가야 하는데 보증금을 돌려받기 힘들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다세대·연립주택 등 빌라에 사는 세입자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리가 급등하고 집값 하락세가 뚜렷해지며 깡통전세 위험에 노출된 2030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 보증보험 사고액은 역대 최고치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세보증보험 사고액(5368억 원)은 지난해 전체 사고액(5790억 원)의 92.7%에 이른다. 이는 2018년 792억 원, 2019년 3442억 원, 2020년 4682억 원 등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집주인이 집값과 전셋값이 오를 걸로 보고 무리한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매매)를 했다가 최근 집값과 전셋값이 모두 하락하자 기존 전세금 수준으로 세입자를 못 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집값을 산정하기 힘든 신축 빌라를 산 뒤 전세금을 집값보다 높여 받는 방식으로 많게는 수백 채의 빌라를 사들인 뒤 의도적으로 전세금을 떼먹는 전세사기 영향도 있다. HUG가 전세 보증금을 대신 갚아준 건수가 3건 이상이고, 집주인에게 이를 돌려받지 못한 금액이 2억 원을 넘어선 ‘악성 임대인’이 203명(7월 기준)에 이른다. 특히 피해 세입자 중 30대 이하가 2808건으로 전체(3761건)의 74.7%를 차지했다.
보증금을 떼이는 세입자가 늘면서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도 늘고 있다. 이는 세입자가 법원으로부터 임차권 등기명령을 받아 등기를 마치면 대항력과 우선 변제권을 유지하며 임차주택에서 자유롭게 이사할 수 있는 제도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대법원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전국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1216건으로 5년 전인 2017년 488건보다 2.5배로 늘었다. 특히 서울에서의 신청 건수는 이 기간 106건에서 363건으로 3.4배로 급증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깡통전세 등 피해가 커질 수 있는 만큼 전세계약에 보증보험 가입을 특약으로 넣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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