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 스타트업계의 현황과 이슈에 대해 인사이트를 담아 소개하겠습니다.
문화예술 스타트업 ‘널 위한 문화예술’이 최근 10억 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번 투자에는 크립톤, KST-신한캐피탈이 참여했습니다.
이번 투자 유치 소식은 문화예술계에 반갑고도 신선한 뉴스였습니다. 서강대에서 심리학과 신문방송학을 복수 전공한 오대우 대표가 2018년 친구, 후배와 함께 차린 스타트업이 이렇게 성장할 줄은 당시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현재 구독자 65만 명인 널 위한 문화예술은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에 올린 300여 편의 영상이 누적 조회 수 3000만 회를 기록한 국내 시각예술 콘텐츠 플랫폼 1위입니다.
오 대표는 1992년에 태어난, 이제 서른 살인 MZ세대입니다. 대학교 4학년이던 2017년, 스브스뉴스에서 인턴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방송사 시사교양 PD가 되고 싶었는데 정작 당시 방송사들은 인터넷을 잡으려고 안달이더라고요. 주변 친구들도 집에 TV를 두지 않고 보고 싶은 콘텐츠를 온라인과 모바일로 봤어요. 굳이 방송사에 입사할 필요가 없겠다, 내 콘텐츠와 내 미디어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근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에 있는 널 위한 문화예술 사무실에서 오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는 이 스타트업을 어떻게 키워낸 걸까요.
“나 같은 사람이 재밌어 하는 문화예술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어떤 계기로 문화예술 미디어 플랫폼을 생각하게 됐나.
“서강대에 다닐 때 학교 메리홀 대극장의 무대를 만들고 음향 효과를 내는 기술 조교생활을 했다. 그곳에 각종 문화예술 잡지가 비치돼 있었는데 칼럼과 정보가 지나치게 정제된 언어로 쓰여 있어 내겐 재미가 없었다. 제작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지,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을 타깃으로 하는 문화예술 콘텐츠와 미디어’를 만들고 싶었다.”
-창업하려면 초기 자금이 필요한데….
“당시 미디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메디아티’에 콜드 메일(cold mail·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메일)을 보냈다. 저희는 이런 팀인데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미투 이슈, 젠트리피케이션 대안 등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고 있다, 임팩트를 낼 수 있는 팀이니 투자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초기 영상들의 반응이 좋았나보다.
“문화예술 공연장이 부족하다는 영상을 만들어 올렸더니 ‘좋아요’가 1000개 찍혔다. 그걸 보고 문화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니즈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콘텐츠 제작 감각에 자부심을 갖는 계기도 됐다.”
-영상 제작은 어디에서 배웠나.
“스브스뉴스에서 배웠다. 처음엔 카드뉴스를 만들었는데 제 큰 몸집을 보고 ‘카메라 잘 들게 생겼으니 영상을 배우라’고 해서 익히게 됐다.”
-메디아티에서 바로 투자를 받았나.
“이 미디어로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사업체를 꾸릴 것인가 질문을 받았는데 미처 생각 못했던 질문이었다. 콘텐츠를 잘 만들기만 하면 투자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당시엔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 ‘시리즈’ 등의 스타트업 업계 용어도 몰랐다. 그렇게 탈탈 멘탈 털려 집에 왔는데 바로 다음날 메디아티에서 연락이 왔다. 인큐베이팅(어엿한 회사로 키워주는 일)을 먼저 하자고. 그날로부터 5, 6개월 메디아티가 경영 공부를 시켜줬다.”
-경영 공부는 어떻게.
“1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 비즈니스 구조를 세워가는 과정을 말씀드리면 피드백을 주고 그에 맞는 레퍼런스를 알려주셨다. 배우러 갔다기보다는 피드백을 받으러 갔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런 걸 공부해봐라, 이런 식은 어떠냐. 진짜 유치원처럼 차근차근 배운 후 메디아티로부터 4000만 원을 투자 받아 창업했다.”
창업 넉 달 만에 시드머니 거의 다 쓰고 조직 재설계
오 대표는 메디아티로부터 투자받은 4000만 원을 4개월 만에 거의 다 썼다고 합니다. 신규 인원 뽑고 제작비와 홍보비를 쓰다보니 창업 5개월째에 딱 한 달치 월급만 남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때에도 소셜미디어에서는 계속 저희가 20대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었어요. 비즈니스 매출은 0원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섭취할만한’ 콘텐츠는 잘 만들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콘텐츠는 문제가 없는데 여전히 돈 버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어요.”
-그 다음에 한 일은.
“한 문화예술계 인플루언서에게 찾아가 말했다. ‘우리 팀이 한 달 치 월급밖에 안 남았지만 꼭 모시고 싶다. 한 달 이후 어떻게 될 지는 상상할 수 없지만 우린 분명히 문화예술계에서 잘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얘기하니 합류하던가.
“당시 20대 중심으로 입소문이 많이 났다. 저희 매체가 재밌어 보이니까 참여를 결심하더라. 신기한 것은 그렇게 새 인물들이 들어오자마자 브랜디드 콘텐츠(창작자가 후원을 받고 비즈니스 파트너를 언급하거나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내용을 담은 콘텐츠)를 진행하게 됐고 월간 손익분기점도 넘겼다.”
‘티핑 포인트’가 된 ‘백남준 다다익선’ 영상
-어떻게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들게 됐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매체력이 커지면서 좀 더 고도화된 기획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백남준 아티스트의 ‘다다익선’의 가동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다익선’은 TV 수상기 1003대로 만든 높이 18.5m의 비디오 타워인데 노후에 따른 화재 위험 등의 문제로 상영이 중단됐다. 그 후 복원 방향을 두고 논쟁이 있어 국립현대미술관 보존팀장,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사, 백남준 작가와 다다익선을 함께 설계했던 김원 건축가 등을 찾아가 인터뷰했다. 영상을 만들어 내보냈더니 페이스북에서 5만5000건의 조회수가 나왔다.”
-영상은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나.
“3주 정도 걸렸다. 처음에 백남준 자서전에 나오는 분들에게 연락했는데 거의 다 이미 고인이 되셨더라. 거의 마지막에 김원 건축가님이 백남준 선생님과 함께 작업했던 걸 알게 됐는데 알고 보니 저희 사무실 근처에서 일하고 계셨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던 백남준 선생님의 생전 생각을 전하는 김 건축가님의 인터뷰가 차별화된 콘텐츠가 됐다.”
-결국 그 영상이 ‘티핑 포인트’(작은 변화들이 기간을 두고 쌓여 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폭발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단계)가 된 건가.
“그렇다. 미술계 ‘고인물’들에겐 일상적인 뉴스일 수 있었지만 이 내용을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흥미를 느낄 포인트가 많았다. 포맷이 중요한가, 콘텐츠가 중요한가. 어떻게 국가의 예술관을 보여줄 것인가 등 여러 질문과 답을 담기에 좋은 주제라 생각했다. 그 전까지는 문화예술 전반을 다뤘는데 이 영상이 터지면서 미술 분야에 집중하게 됐다.”
“세 명 뽑으려고 공고 냈더니 420명 몰려”
널 위한 문화예술은 동아일보와도 인연이 있습니다.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 프랑스 아티스트 다니엘 뷔렌을 초대해 작업한 동아미디어센터 미디어아트 ‘한국의 색-인 시튜 작업’(2019~2021년)을 널 위한 문화예술이 영상으로 소개한 것이죠. 당시 해외 유명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영상을 제작한 것은 널 위한 문화예술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저희에겐 큰 기회였다. 창업한 지 1년 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사옥을 지나칠 때마다 좋은 기억이 난다.”
-회사 경영에서 코로나19의 영향은 어땠나.
“극장이나 공연장에 비해 미술관과 갤러리는 동선이 자유로운 측면이 있어 코로나에 대한 방어율이 있는 셈이었다. 해외여행도 못 가는데 미술관에 가자, 는 분위기도 있었다. 젊은 세대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커진 것도 큰 변화였다.”
-현재 널 위한 문화예술 구성은.
“7명이 일하고 있다. 요즘엔 콘텐츠 기획만 하고 제작은 외부 크리에이터와 협업해 만든다. 최근 투자 유치를 받고 세 명을 새로 뽑으려고 공고를 냈더니 420명이 지원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절실히 느낀다.”
-널 위한 문화예술은 유튜브에서 ‘널 위한 문화예술’과 ‘예술의 이유’ 두 가지 계정을 따로 운영한다. 예술의 이유는 ‘모네는 왜 수련을 그렸을까’ ‘폴 고갱이 왜 타히티로 떠났을까’ 같은 주제를 다룬다. 이렇게 따로 운영하는 이유는.
“‘예술의 이유’의 숏폼 영상이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유튜브 쇼츠에서 1주일 만에 400만 건이 넘는 조회를 올리더니 인스타 릴스, 틱톡, 카카오 오늘의 숏 등 여러 숏폼 플랫폼에서도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덕분에 각 채널 유입 숫자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 관점, 사용자 관점에서 미술의 세계를 알리고 싶다.”
-연계해 전시 티켓도 팔던데.
“저희 콘텐츠를 보러 오는 사용자는 결국 각종 전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창작자가 제아무리 작품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도 소비자가 이해할 수 없으면 괴리가 생긴다. 예전에는 갤러리들이 이 정보격차를 줄여주는 역할을 했는데 요즘에는 개인 인스타그램만도 못한 매체력을 갖는 경우도 있다. 컬렉터들의 정보 교환 자체가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 격차를 줄여나가면 우리는 새로운 채널이 될 수 있다는 가설로 접근했다. 티켓을 한정 수량 판매하면 수익을 온전히 갖게 된다.”
널 위한 문화예술의 성공 요인, 결국엔 콘텐츠의 힘
-앞으로 계획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미디어 플랫폼은 신뢰자본을 쌓는 게 우선이다. 사람들은 어떤 미디어가 믿을만한가, 진짜로 유익한가를 따지고 그에 대한 충분한 컨센서스가 이뤄졌을 때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처음부터 저희 채널을 통해 전시 티켓을 팔았으면 지금과 같은 판매력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해외의 ‘아트시’나 ‘아트넷’처럼 컬렉터 또는 예비 컬렉터에게 유익한 콘텐츠를 계속 생산해 1차적으로 찾아오게 만들고 그들이 믿을 만한 작품을 소개해 판매로 연계시키려 한다.”
-널 위한 문화예술은 어떻게 수익을 내게 되나.
“수수료 비즈니스다. 다만 현재는 갤러리와 작가가 주로 반반씩 나눈다. 갤러리들이 작가 발굴과 관리, 작품 유지 관리까지 하기 때문이다. 저희는 작가 스튜디오에서 소비자로 직송 되는 시스템을 계획하기 때문에 그런 비용이 들지 않게 될 것이다.”
업계에서는 널 위한 문화예술의 성공요인으로 콘텐츠의 힘을 꼽습니다. 하나의 이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이용자의 호기심과 흥미를 끌어내는 콘텐츠의 힘이 통했다는 분석입니다. 이용자들의 시청 지속시간 데이터를 분석해 섬네일, 제목의 적합성, 문장길이, 영상의 색감 등을 세밀하게 평가하는 것도 콘텐츠의 품질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현대카드, 폭스바겐그룹코리아, 네이버문화재단 등 다른 기업 및 기관의 협업도 활발합니다. 온·오프라인을 병행하고 플랫폼을 다양화하는 전략도 돋보입니다. 결국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예술에 접근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널 위한 문화예술의 도전과 도약은 이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시각예술 콘텐츠가 독자적 분야로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것인지 문화예술계와 미디어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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