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1∼6월)까지 고운임 기조에 실적 강세를 보이던 해운업이 9월 들어 ‘피크 아웃(Peak-out·수요가 정점을 찍고 하락세를 보임)’에 돌입했다. 글로벌 해상 운임료는 2020년 말부터 고공행진을 이어오다가 7월부터 급락했다. 해운업계에선 “실적 파티는 끝나고 본격적인 조정기가 시작됐다”는 비관론이 나온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컨테이너선 해운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9일 2562.1을 나타냈다. 올해 최고점인 1월 7일 5109.6 대비 절반 가까이(49.9%)가 줄어든 수치다. 철광석 등 원자재 벌크선 운임료를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5650까지 치솟았다가 지난달 말 965로 82.9% 급감했다.
류동근 한국해양대 해운경영경제학부 교수는 “SCFI가 급락했지만 1000 선 미만에 머물던 팬데믹 이전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하지만 경기 사이클상 불황으로 넘어가는 조정기의 전형적인 모습이어서 어디까지 조정이 이뤄질지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성수기로 꼽히는 9월에 각종 운임 지수가 떨어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통상 미국 최대 쇼핑 시즌인 11월 블랙 프라이데이와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컨테이너선 물동량이 늘면서 관련 지수는 높아진다. 지난해 9월에도 SCFI는 전달 대비 평균 6.5%가 뛰었다. 반면 올해는 지난달 5일 대비 9일 31.5% 내려갔다.
업계는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정책 등에 따른 소비시장 위축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시장조사업체 DSCC에 따르면 액정표시장치(LCD) TV 패널(65형) 가격은 평균 109달러로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해 7월(288달러)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요 감소로 제품 재고가 급격히 쌓이고 있다는 증거다. LG디스플레이의 상반기 재고자산 총액은 전년 동기 대비 73.4% 늘어난 4조7225억 원이다. 삼성전자의 상반기 재고자산도 사상 처음으로 50조 원을 넘어섰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하반기, 특히 4분기(10∼12월)는 가전 업계에서 가장 큰 장인데 판매량이 늘지 않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가장 우려된다”며 “특히 가전업계는 미국 시장의 주문이 크게 둔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도 “전쟁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소비자들이 가전기기를 살 돈으로 가스비와 식료품 등 필수 소비재에 돈을 써야 하니 가전제품을 살 여력들이 많이 떨어졌다”며 “수요가 계속 주니까 가동률과 생산률을 낮추면서 가격 하락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 역대 최고 영업이익을 낸 HMM도 하반기(7∼12월)에는 실적에 먹구름이 낄 것으로 보고 있다. 4분기에는 작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편 해운 운임이 급락하면 경상수지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7월 경상수지에 포함되는 서비스수지는 3억4000만 달러 흑자였다. 운송수지 흑자 규모가 18억4000만 달러로 1년 새 3억6000만 달러 늘어난 덕분이었다. 올해 1∼7월 운송수지 흑자는 124억8000만 달러로 같은 기간 경상수지 흑자(258억7000만 달러)의 48.2%에 달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수출 부진으로 상품수지 적자는 향후에도 이어질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운송수지 등이 흑자 행진을 이어오면서 이를 상쇄해 왔는데, 그 효과가 곧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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