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타트업 업계가 자금줄이 마르는 이른바 ‘돈맥경화’에 시달려 10곳 중 6곳은 지난해보다 경영 악화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당분간 투자 환경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규제 완화 등 제도 손질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22일 대한상공회의소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국내 스타트업 25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59.2%가 지난해에 비해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답했다. 주요 원인(중복 응답)으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심리 악화(52.7%)와 내수시장 부진(52.7%)을 가장 많이 꼽았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현상 심화(35.6%), 글로벌 시장 불안 고조(25.3%)가 뒤를 이었다.
지난해보다 투자가 늘어난 곳은 16%에 불과했다. 나머지 84%는 투자가 줄었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공작기계 공유 서비스를 운영하는 A 대표는 “투자를 받으러 이곳저곳 뛰어다녔지만 문전박대당했고 은행 문턱도 높아졌다”며 “기술 개발 등 기업 성장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쌓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호소했다.
‘언제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보는지’ 묻는 질문에는 가장 많은 31.2%가 내년 하반기(7∼12월)라고 답했다. 내년 상반기(1∼6월)가 24.8%, 2024년 이후가 14%였다. 10곳 중 1곳은 “기약이 없다”고 했다.
스타트업 업계는 국내 민간 투자 환경이 해외보다 열악하다고 지적하며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제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CVC는 대기업이 직접 자본을 출자해 운영하는 투자회사다. 국내에서 CVC를 설립하려면 100% 완전자회사여야 하고, 해외 자본을 40% 이하로 제한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규제 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업계는 요구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유기적인 연결고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스타트업이 지속 성장하려면 판로를 개척하고 기술 혁신이 활발해야 하는데 대기업과의 협업에 장벽이 높다는 이야기다. 한 글로벌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 업체 임원 B 씨는 “스타트업이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과 서비스를 갖고 있더라도 시장 진입이 쉬운 게 아니다”라며 “대기업과 협업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뢰도를 높일 수 있어 확실한 무기를 가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주영 대한상의 사업화팀 팀장은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데도 만남이 성사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민간 주도 창업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실무 네트워크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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