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영공 막혀 ‘북극항로’ 이용 못해
미국 동부~인천 우회 노선, 제트기류 맞바람으로
1~2시간 더 걸릴 수도
4인 16시간 근무 규정까지 겹치면서 항공사 골머리
“미국 동부에서 오는 비행시간이 16시간을 훌쩍 넘을 것이다.”
4일 국내 대형 항공사의 한 기장이 한 말이다. 평소라면 15시간 정도 비행하는 미국 동부(워싱턴, 애틀랜타, 뉴욕, 시카고, 보스턴 등)에서 인천으로 오는 노선의 비행시간이 1~2시간 이상 늘어날 것이란 지적이다. 운행 시간이 대폭 늘어날 경우 급유와 안전 문제 등으로 미국 앵커리지나 LA 등 서부 지역에 한 번 착륙하는 ‘테크니컬 랜딩’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겨울철 제트 기류와 러시아 영공 우회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겨울철 제트기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영공 우회 문제가 겹치면서다. 여객기가 비행하는 고도에서는 이른바 ‘제트기류’라고 하는 강한 편서풍이 분다. 시속 150~400㎞ 정도의 바람인데, 겨울철(10월 중순부터 3월)엔 제트기류가 일본과 태평양, 러시아 캄차카반도 쪽으로 올라와서 형성된다.
이에 항공사들은 계절별로 항로를 변경한다. 특히 겨울철엔 항공사들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노선의 경우 강한 맞바람인 제트기류를 피해 북극 항로를 이용한다. 여름철에 미국 앵커리지 근방을 지나 캄차카반도를 거쳐 일본을 경유하는 노선(NOPAC)을 사용하는 것과 대비된다.
그런데 현재 북극 항로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 하늘길이 모두 막혔기 때문이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려면 캄차카반도 등 러시아 영공을 지나야 한다. 이에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러시아 영공을 우회해 더 남쪽으로 내려와서 돌아오는 노선(태평양노선)을 대안으로 사용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 노선은 겨울철엔 제트기류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미국으로 갈 땐 바람을 타고 가므로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미국에서 올 때는 강한 제트기류를 정면으로 맞으면서 와야 하기에, 비행시간이 대폭 늘어난다.
비행기의 평균 시속은 1000㎞ 정도인데, 시속 약 200㎞의 제트기류를 정면으로 맞는다고 가정하면 시속 800㎞로 비행을 하는 셈이 된다. 산술적으로 20% 정도 시간이 더 소요 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우회 노선인 태평양 노선을 이용해 미국 동부에서 인천으로 오는데는 약 15시간이 걸리는데, 지금 상태라면 최소 16시간 이상 비행을 해야만 한다.
국내 대형항공사의 한 기장은 “모든 노선에서 제트기류가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도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비행시간이 더 걸린다고 추정된다.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상황이라서 이마저도 추론일 뿐”이라며 “여기에 돌발 상황이 생기면 비행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고, 주유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등 기상 상황에 따른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운항승무원 4명이 최대 16시간만 근무해야
여기에 법적인 문제도 걸려 있다. 현행 항공안전법의 운항승무원 승무 시간 규정에 따르면 기장 2명과 부기장 2명을 포함해 총 4명의 운항승무원이 최대 승무 시간은 16시간이다. 비행안전을 위해 근로 시간을 규정해 놨다. 그런데 16시간을 넘어서는 비행에 대해서는 승무원 숫자나 근무 시간 등을 규정하는 법이 아예 없다. 운항승무원을 한 명 더 태우고 근무 시간을 조정하고 싶어도, 운항승무원을 더 태워서 5명으로 늘리거나 근무 시간을 조정하기 위한 규정이 없는 것이다. 더욱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회사와 맺은 단체협약에도 승무원 확충 및 근로 시간 확대 규정이 없다. 현행법에 따라 16시간 이상 운항을 하려면 중간 기착지에 내려서 즉, 테크니컬 랜딩을 해서 승무원을 교체해야 한다.
이에 대한항공은 최근 예외적인 비행 상황이라며 운항승무원을 5명 태워서 초과 근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국토부와 협의를 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운항승무원들과 근무 변경 내용을 미리 논의하지 않았고, 국토부는 최근 ‘노사 의견을 수렴하고 피로 대책 등을 마련해야만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행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국내 조종사는 “16시간 이상 비행을 하려면 경유해야 하는데, 이는 승객도 조종사도 모두 불편하다. 그런데 승무원을 늘리고 근무 시간을 늘리고 싶어도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항공 당국에서 근로 시간이나 피로 대책 등에 대한 방침을 정해주고, 회사와 조종사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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