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4일 만났다. 두 사람은 삼성전자와 반도체 설계기업 ARM의 전략적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초미의 관심사였던 삼성의 ARM 인수 또는 지분 투자에 대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독점 문제와 ARM의 50조원이 넘는 비싼 몸값 등을 고려할 때 삼성의 ARM 단독 인수는 사실상 어렵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은 전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회동했다. 이 자리에는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장(사장), 노태문 MX(모바일경험)부문장(사장) 등 삼성 측 최고경영진과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CEO) 등이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손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최대주주인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기업 ARM을 삼성의 인수 대상으로 꼽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지난달 21일 유럽·중남미 출장 귀국길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서울에 올 것이다. 아마 그때 (ARM 인수 관련된) 제안을 하실 것 같다”고 말하면서 삼성의 ARM 인수 가능성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손 회장도 방한 전 “이번 (서울) 방문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삼성과 ARM의 전략적 협력을 논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ARM은 PC 중앙처리장치(CPU)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칩 설계의 핵심 기술을 보유한 IP(지적재산) 판매 업체다. 현재 전세계 스마트폰 칩 설계의 95%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IoT AP 칩 점유율도 90%인 독보적인 반도체 설계업체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AP인 엑시노스 프로세서도 ARM 설계를 기반으로 생산한다.
시스템반도체 강화 측면에서 삼성의 ARM 인수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이날 자리에서는 ARM 매각 관련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손 회장은 ARM 매각보다는 기업공개(IPO)에 무게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또는 영국 런던증권거래소 등에 상장을 고려 중이다.
손 회장은 지난 2020년 위워크 등 잇단 기업투자 실패로 천문학적 손실을 내면서 자금 조달을 위해 미래 전략의 핵심이었던 ARM을 매물로 내놨다.
다만 반독점 문제로 특정기업이 ARM을 인수하기는 무리이기 때문에 IPO(기업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앞서 ARM 인수를 추진했던 엔비디아도 독과점을 우려한 주요국의 반대로 실패했다. 여기에 400억 달러(약 56조8800억원)가 넘는 비싼 몸값도 부담이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만남에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투자한 로봇 또는 AI(인공지능) 관련 업체에 대해 논의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은 미래 사업으로 로봇과 AI 등을 꼽아왔다. 앞서 현대자동차그룹도 비전펀드로부터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전격 인수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ARM은 한 기업이 사기는 쉽지 않다”며 “이 부회장과 손 회장도 이런 부분을 알고 매각 논의를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의 경우 ARM을 인수하지 않고도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은 많다”며 “다른 협력 방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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