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와 미국 국가표준협회(ANSI)는 인공지능(AI)·메타버스 오디오 전문 스타트업 ‘가우디오랩’의 기술 ‘LM1(Loudness Management 1)’을 기술 표준으로 채택했다. 세계 최대 국제전자제품 박람회 CES의 주최기관이기도 한 CTA는 사실상 가전사들의 유일한 커뮤니티. 그만큼 이곳에서 채택한 표준은 자연스럽게 세계적인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는 “이번 표준을 애플, 구글 등이 리드한 만큼 iOS와 안드로이드에 기술이 적용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독보적인 기술력이나 국내에서 검증받은 시장성으로 해외에서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는 한국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기업가치나 직원 규모 등의 측면에서는 유니콘 기업에 미치지 못하지만, 오히려 세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기술이나 서비스를 갖춰 성장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겪는 ‘들쭉날쭉’ 음량 문제 해결
가우디오랩의 LM1은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나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의 음량 편차를 제어한다. 여러 개의 영상·오디오 콘텐츠를 소비할 때 콘텐츠마다 음량이 들쭉날쭉해 갑자기 소리가 커지거나 작아져 청력이 손상되거나 불편을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전 세계 콘텐츠 소비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인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는 그동안에도 많이 이뤄져왔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우디오랩의 기술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색다른 접근방법이 있다.
오 대표는 “기존에는 mp3, mp4 등 각각의 오디오 코덱 안에 개별적으로 음량평준화 기능을 넣어왔는데, 가우디오랩은 코덱과 상관없이 플랫폼에 적용하는 콘셉트”라며 “파일 포맷 원본은 그대로 둔 채 별도 부가정보를 보내주는 방식으로 음량평준화를 구현한다”고 말했다.
이미 국내에서는 해당 기술이 2020년 12월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에서 한국 표준으로 정식 승인돼 네이버 나우, 플로, 벅스 등 다수의 국내 스트리밍사를 통해 상용화된 상태다.
●해킹 불가한 동형암호 개발
암호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크립토랩’도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천정희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가 2017년 12월 창업한 이 회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양자컴퓨터도 뚫지 못하는 동형암호를 개발했다.
대개 해킹은 암호 처리된 자료를 수정하기 위해 암호를 잠시 해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크립토랩의 기술은 작업을 암호화된 상태에서 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때문에 해커들이 보안을 뚫을 수 없다. 암호를 풀었다가 다시 암호화하는 과정도 생략하기 때문에 작업 속도도 대폭 높일 수 있다.
천 대표는 2018년 국제유전정보 보안분석대회(iDASH)에서 겪은 웃지 못 할 해프닝을 계기로 창업했다. 해당 대회에서 1~3위를 비롯해 입상한 모든 팀이 천 대표가 개발한 동형암호 기술로 만든 솔루션 ‘HEaaN(혜안)’을 이용했던 것. 반면 천 대표는 4등에 그쳤다. 학계에 발표된 논문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금속활자를 가장 먼저 만들었는데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더 유명한 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상용화됐기 때문”이라며 “원천기술 개발뿐 아니라 이를 상업화하고 IP와 특허권을 제대로 보호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크립토랩의 동형암호 기술은 마이크로소프트, IBM의 자사 라이브러리에 탑재돼있다. LG유플러스, 삼성전자 등과도 각종 동형암호 협력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국처럼 교육열 높은 시장 진출
에듀테크 스타트업 ‘매스프레소’의 AI 수학 문제 풀이 앱 ‘콴다’는 베트남에서 가입자 수(1880만 명)가 한국 가입자 수의 2.3배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콴다는 학생이 모르는 문제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하면 자체 개발한 AI 기반 광학문자판독(OCR) 기술이 인식해 풀이와 연관 학습 콘텐츠를 제공한다. 문제가 축적되면서 AI의 학습량이 늘어나 OCR 기술도 계속 고도화되고 있다.
콴다가 베트남에서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회문화적 여건이 자리잡고 있다. 매스프레소 관계자는 “베트남은 한국처럼 교육열이 높고 사교육 시장이 발달했지만 소득 불평등으로 양질의 교육은 도시나 상위 소득 계층에게 집중돼있는 상태”라며 “이 때문에 시공간의 제한 없이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수 있는 서비스가 인기를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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