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7일 “물가가 내년 1분기까지 5%대 아래로 빠르게 내려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물가가 5%를 넘으면 금리인상 기조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또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는 글로벌 달러 유동성이 위축되는 상황이 와야 체결이 가능하고, 체결해도 환율을 장기적으로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물가가 5%대에서 얼마나 빨리 내려오는지가 중요한데 고물가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같이 밝혔다.
그는 “모든 요건들이 물가가 5%에서 빨리 내려오지 않는 요인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걱정하는 것은 내년 1분기까지도 5%대에서 물가가 안 내려 올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가가 5% 이상이라 먼저 잡지 않으면 다른 문제가 증폭되거나 서민 고통이 클 수 있다”며 “공급, 수요 모두 고려하지만 물가가 5% 이상이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보고 있고, 그 이하로 떨어지면 다른 정책 조합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가 정점에 대해서는 “물가 정점을 아직 10월이라고 보고는 있다”며 “유럽이 겨울로 들어가면 유가가 다시 변할 수 있고, 달러 변수도 이어지고 있어 10월 정도로 예측은 하고 있지만 정점도 바뀔 수 있어 더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부동산 가격이 지난 몇 년간 올라 금리 상승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제2금융권의 부실 정도가 문제가 될 수 있어 모니터링 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추세를 볼 때 소규모 금융기관만 문제가 되고 있지만, 금리 정책을 하는데 중요한 사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가 환율을 장기적으로 안정시킨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은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 것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여러 다른 요인들을 고려해 봐야 한다”며 “통화스와프 체결을 위해서는 글로벌 달러 유동성이 위축되는 상황이 와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 통화스와프 결정은 미 연준이 선택하는 것이고 연준과 많은 정보를 교환, 논의하고 있는데 적절한 때 심도있게 미 연준과 논의하겠다”며 “연준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어느 상태인지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연준 결정에 관여하는 것이라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이 연말 금리를 4.5%까지 올릴 예정인 가운데, 미국과의 금리차를 어느 수준에서 유지하는 게 적절하냐는 질문에는 “다음 주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기 때문에 부적절 하다”며 답변을 피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적절하냐는 질의에는 “국제통화기금(IMF) 내에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부족하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며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낮은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모두발언을 통해서도 “외환시장에서 환율의 쏠림현상이 나타날 경우 시장 안정화 조치를 적기에 실시하겠다”며 “높은 수준의 환율이 추가적인 물가상승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올해와 내년 연간 경상수지 전망에 대해서는 “경상수지가 상반기에 270억 달러 정도의 흑자가 나 하반기 몇달 동안 흑자와 적자를 왔다 갔다 하더라도 연간 전체로는 흑자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며 “통계적으로도 이미 반년 이상이 지났기에 확실하다”고 말했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8월 경상수지(잠정)에 따르면 8월 경상수지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4억9000만 달러 감소하면서 30억5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4월(-8000만 달러) 이후 4개월 만의 적자 전환이다. 적자폭도 2020년 4월(-40억2000만 달러) 이후 2년 4개월 만에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이 총재는 “내년의 경우 반도체 경기가 2분기가 지나면서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고, 전 세계 경기 침체도 상반기에 집중되고 상반기 이후 회복 되는 국면이 있고, 에너지 가격도 조금 안정되면서 이전보다는 적겠지만 내년에도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유사시 국내에 달러를 공급하기 위한 안전장치인 ‘피마 레포(FIMA Repo) 제도’에 대해서도 “피마는 좋은 아이디어 이지만 우리 상황이 그리 시급하거나 하지는 않다”며 “필요하면 나중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마 레포 제도’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른 나라 중앙은행이 보유한 미 국채를 환매 조건부로 매입하는 제도다.달러 유동성이 부족할 때 한은이 외환보유액으로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담보로 제공해 이를 팔지 않고 달러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과 600억 달러 한도의 계약을 체결한 후 한 번도 활용되지 않았다. 주로 신흥국들이 활용하는 방식이라 활용 시 오히려 금융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금통위 직후 “기준금리를 당분간 0.25%포인트씩 올린다”고 한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예고 지침)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 발언을 했을 때 9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결정을 봐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말했는데 그것을 같이 보고 판단해 달라”며 “미 연준이 최종 금리를 0.5%포인트 정도만 더 올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1.0%포인트나 올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앞서 지난 7월 금통위 이후 “당분간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하는 점진적 인상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미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자 “0.25%포인트 인상은 전제조건 이었다”며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이 가능하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를 따라갈 수 있냐는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며 “우리가 미국의 빅스텝을 보는 이유는 물가와 외환시장에 주는 금융시장 안정 효과를 보는 것이지 기계적으로 금리차를 보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맞는 통화정책을 해야한다는 것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분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중단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 하락 정도와 관련이 있다”며 “대규모 업체라기 보다는 신용도가 낮은 업체에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금감원, 금융위와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PF대출은 건설업체가 아파트, 오피스텔 등 개발사업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받는 대출을 말한다. 은행권은 최근 금리인상과 부동산 가격 하락 등으로 부동산 분야 PF대출 취급을 사실상 중단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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