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경상수지가 넉 달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글로벌 고강도 긴축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경상수지가 크게 악화되며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가 만성화될 경우 한국의 대외 신인도가 떨어지고 원화 가치 하락세가 가팔라질 수 있다.
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에 따르면 8월 경상수지는 30억5000만 달러 적자로 잠정 집계됐다.
올해 경상수지 적자는 4월(―8000만 달러)에 이어 두 번째다. 매년 4월은 외국인투자자에 대한 배당이 몰리기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 폭이 크게 줄거나 간혹 적자를 보이는 시기다. 이런 계절적 요인이 반영되는 4월을 제외하고 경상수지가 적자를 낸 건 2012년 2월(―25억8000만 달러) 이후 10년 6개월 만이다. 그만큼 에너지 가격 급등과 글로벌 경기침체로 무역 여건이 크게 악화됐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대외건전성의 기본 안전판은 경상수지”라며 “올해 연간으로 흑자가 예상되긴 하지만 선제적으로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0.0원 오른 1,412.4원에 마감했다.
유가 상승-中침체 악재 줄줄이… 정부는 “경상적자 일시적”
8월 경상수지 적자
에너지값 급등에 수입 31% 폭증… 글로벌 침체에 수출 8% 증가 그쳐 상품수지 2개월 연속 적자 기록… 경상-재정 ‘쌍둥이 적자’ 가능성도 韓銀 “9월 무역적자 크게 축소, 연간 경상수지 흑자 기조 유지”
8월 경상수지는 상품수지가 크게 악화되면서 적자로 돌아섰다. 경상수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수지는 44억5000만 달러 적자로 7월(―14억3000만 달러) 이후 2개월 연속 적자를 냈다.
상품수지가 악화된 건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수입이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8월 수입액은 1년 전보다 30.9% 급증한 617억3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원자재 수입액이 36.1% 늘었는데 석탄, 가스, 원유의 수입 증가율이 각각 132.3%, 117.1%, 73.5%에 달했다. 반도체(25.4%) 등 자본재 수입도 16.4% 늘었고, 승용차와 곡물을 비롯한 소비재 수입도 28.2% 증가했다.
반면 수출액은 석유제품을 중심으로 7.7% 늘어난 572억8000만 달러에 그쳤다. 비록 22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올해 6월(9.1%) 이후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글로벌 긴축과 함께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기가 빠르게 식고 있기 때문이다. 8월 대중(對中) 수출은 1년 전보다 5.4% 감소했다. 서비스수지 역시 7억70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수출화물운임이 하락하며 운송수지 흑자가 줄고, 방역 규제 완화로 해외여행객이 늘며 여행수지 적자가 커진 영향이다.
다만 정부는 8월 경상수지를 대규모 무역적자에 따른 ‘일시적’ 적자로 평가하고 있다. 9월 들어 무역적자가 크게 축소된 만큼 경상수지가 다시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뜻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경상수지가 상반기에 270억 달러 흑자가 나 하반기 몇 달 동안 흑자와 적자를 왔다 갔다 하더라도 연간 전체로는 흑자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며 “통계적으로도 이미 반년 이상이 지났기에 확실하다”고 말했다. 최상목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글로벌 복합위기 장기화가 당초 우려했던 것처럼 현실화하는 상황이고 당분간 월별 경상수지는 높은 변동성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올해 연간으로는 상당 수준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앞으로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의 경상수지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특성상 ‘수십 개월 연속 흑자 행진’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는데 올 들어서만 4월에 이어 벌써 두 번째 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 배당 악재가 없는 8월에 적자가 났다는 점이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월간 적자가 빈번하게 발생하면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고 원화 가치 하락 압력을 키울 것”이라며 “최근 한미 기준금리 역전에 따른 시장 불안이 더욱 증폭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앞으로 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더 뛴다면 연간 흑자 규모도 예상치보다 크게 줄어들 우려가 있다.
만일 경상수지 적자가 고착화되면 달러화 공급이 막히면서 가뜩이나 불안한 외환시장이 더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고물가에도 영향을 주고 금융시장에서는 외국 자본의 유출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 여기에 재정수지마저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어서 경상수지와 함께 ‘쌍둥이 적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상당하다.
정부는 이날 경상수지 체질 개선을 위해 총 18건의 국제수지 대응 방향을 확정했다. 수출 여건을 개선하고 수입을 줄이는 한편 여행 등 서비스 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들이 모두 담겼다. 다만 이번 방안은 대개 중장기적인 대책들이라 당장의 위기를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최근 국내외 경제와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져가고 있다”며 “이번 복합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는 안전판을 정부가 선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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