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희 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출근 저지 투쟁하던 노조, 4년 뒤 반전의 드라마
‘희망 근무지 함께 기피 근무지도 제출하라’
회전문 인사, ‘그들만의 리그’를 없애다
‘국민은 공공기관의 시작이자 끝’
‘시대착오적 권위주의, 올드보이 윤대희의 행태에 경악한다.’
2018년 6월 대구에 본사를 둔 신용보증기금 정문에 노조위원장과 노조 간부들은 이런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윤대희 신임 이사장의 출근을 가로막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국무조정실장인 윤대희 이사장을 ‘올드보이’라 부르며 노조에서 반대투쟁을 선언한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여느 공기업 사장 취임을 결사반대한다는 노조의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4년여 흐른 2022년 9월 퇴임을 앞둔 윤 이사장 집무실에 노조 간부들이 ‘들이닥쳤다’(?). 조재완 노조위원장은 퇴임이 임박한 윤 이사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4년 동안 신용보증기금 발전을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출근 저지 투쟁을 하던 노조가 180도 태도를 바꾼 신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윤 이사장이 최근 펴낸 ‘신의 직장 CEO일지’ 회고록(삼인)에 그 비결이 담겨 있었다.
●‘올드보이의 귀환(?)’
문재인 정부 출범 후 1년이 흐른 즈음인 2018년 4월 윤대희 씨는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공모에 지원해보라는 권유를 주변에서 받았다. 같은 해 2월 내정된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가 검증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자리가 4개월째 공석으로 있던 터였다. 문재인 정부가 관료 출신 구인난에 허덕인다는 뒷얘기도 들렸다.
그는 2008년 노무현정부의 마지막 국무조정실장을 끝으로 관직을 떠나 가천대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물밑에서 돕기도 했지만 관직에는 큰 욕심이 없었다. 당시 그의 나이 68세.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젊은 편이라곤 할 수 없는 나이였다.
행시에 합격하기 전 그는 서울은행 신용조사부에서 중소기업 신용평가 업무를 한 적이 있었다. 경제관료가 되어선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립에 참여해 중소기업 분야를 맡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3년간 과장으로 일하며 대기업 주도 경제 구조 아래서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일도 했다. 당시 경험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 국무조정실장을 맡으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 밑거름이 됐다.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되면 훨씬 손에 잡히는 방식으로 중소기업을 도울 수 있겠구나.’
‘국무조정실장까지 지낸 사람이 공공기관장으로 부임하는 것이 맞을까? 후배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자리가 아닐까?’
한번 먹은 마음을 돌이키기는 어려웠다. 공모에 지원해 일곱 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2시간 동안 면접을 봤다. 임원추천위원회에서 그를 포함한 3명을 선정해 금융위원회에 보냈고, 금융위원장은 윤대희 후보를 낙점해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언론들은 ‘올드보이의 귀환’이라며 낙하산 인사라고 비판했다. 다른 공공기관 인사까지 동원해 ‘모피아’ 프레임으로 비판하는 기사도 쏟아졌다.
‘기사 한번 고약하게 썼구나.’
속으론 섭섭했지만 나라의 녹(祿)을 먹으니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노조위원장과 티타임 한번 가지시죠’
신보 비서실장과 인사부장 등 간부들은 “본점에 들어가시기 전에 노조위원장과 티타임을 한번 가지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채근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회사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노조와 만난다는 것은 중학생이 대학생을 만나는 격이었다. 생산적인 얘기를 나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돌려 말하면 노조에 항복하고 들어오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앞으로 또 다시 나한테 노조위원장과 사전 미팅을 하라는 사람은 신임 이사장과 뜻을 같이 하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사장의 한마디에 그 뒤론 아무도 노조를 만나라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중에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한 간부가 이사장 대신 노조를 찾아가 출근저지 투쟁 같은 것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지만 먹히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윤 이사장이 대구 본사 정문에 도착했을 때 그를 반긴 건 차량 진입을 막아선 노조위원장과 간부들이었다. 이들은 ‘시대착오적 권위주의 올드보이 윤대희의 행태에 경악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건물 주변엔 ‘이사장의 자격을 묻는다. 존중 배려 신뢰의 노사관계’ ‘준비되었는가? 윤대희 이사장 노사상생 외면 경영적폐 청산’ 등의 현수막이 어지러이 걸려 있었다.
차에서 잠깐 내린 윤 이사장은 순순히 길을 내주지 않을 것 같은 낌새를 파악하고 차를 돌려 영업현장에 있는 대구지점으로 갔다. 공기업 낙하산 사장의 경우 대개 이런 경우 노조위원장과 호텔에서 만나 노조가 요구하는 사안을 전달받고, 낙하산 사장은 보너스 등 이면 계약을 하면서 은밀한 ‘뒷거래’를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낙하산 사장의 본점 입성 절차다.
하지만 윤 이사장은 노조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노조 간부들은 당황해했다. 교착 상태에 빠지자 노조 측은 간부를 통해 신용보증기금 발전을 위한 정책자료집을 보내왔다. 윤 이사장은 ‘신용보증기금 노동조합에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편지 한 장을 썼다. 노조에 대한 이사장의 생각과 동반자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노조에서 진심을 느꼈는지 출근저지 투쟁을 이틀 만에 끝냈다.
윤 이사장은 취임 후 간부들에게 각 부서에서 기획하는 내용이 직원들의 근무 여건이나 복지 등과 관련된 경우 노조와 반드시 사전협의할 것을 당부했다. 이사장이 노조의 존재와 권리를 인정하는 만큼 노조도 경영권과 인사권 등 경영진 고유의 정당한 권한을 부정하거나 침해해선 안 된다고 분명한 선을 정해놓았다. ‘동반자적 협력관계’라는 명확한 경영철학이었다.
●‘의인불용(擬人不用) 용인불의(用人不擬)’
윤 이사장이 인사운영의 원칙으로 삼은 것은 ‘송사(宋史)’에 나오는 ‘의인불용(擬人不用) 용인불의(用人不擬)’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기용하지 말고, 일단 기용했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이 원칙을 채용은 물론 주요 보직 인사에서 그대로 적용했다. 노사관계는 상호 신뢰 바탕 아래 역지사지(易地思之) 자세로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었다.
윤 이사장의 인사 철학은 우선 인사 제도에 관한 건의는 열린 마음으로 적극 수용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특정인에 대한 청탁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인사 청탁은 인사권자와 직원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최악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사권은 경영권과 함께 존중 받는 권리라는 것이다. 경영진이 노조의 존재와 권리를 존중해야 하듯 노조 또한 CEO(최고경영자)의 인사권을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4년 내내 윤 이사장의 인사 철학과 방침은 이런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윤 이사장은 취임 후 반년이 지난 2019년 상반기 2500여명의 신보 직원에 대해 정기인사를 단행하면서 2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직원들에게 명확한 인사 원칙을 제시하고 그 원칙이 지켜지고 있음을 직접 느끼도록 해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특정 학교 지역 기수별 2명까지만 부서장 배치
첫째는 특정 학교와 지역, 기수별로 균형을 맞추라는 것이다. 본점 부서장 자리엔 특정 학교 지역 기수별로 최대 2명까지만 배치할 것을 인사부에 지시했다. 쿼터제를 통해 쏠림을 막는 것이다. 몇몇 간부들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려면 불가피한 경우 예외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묵살했다. 부서장을 맡을 수 있는 직급에 오른 직원이라면 누가 어느 자리에 가든 금세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서였다. 예외를 두면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막상 이런 원칙 아래 인사를 하다 보니 일부 부서의 경우 본점에서 팀장 경력이 없는 부서장이 배치되기도 했다. 적잖은 간부들이 본점이 제대로 돌아가겠느냐며 걱정하는 눈치였다. 인사 발령 후 첫 부서장 회의를 열었는데, 절반은 윤 이사장이 얼굴도 모르는 ‘낯선’ 부서장들이었다고 한다. 간부들의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어느 부서장 빠짐없이 빠르게 잘 적응해 본점 마비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10년 내 본점 근무 의무화
누구든지 입사 후 10년 이내에 본점 근무를 최소한 한번은 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것이었다. 순환근무의 원칙이다. ‘순환=회전문’이라는 직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윤 이사장은 ‘4급이하 본점 근무 경험이 없는 직원의 신규 전입을 확대해 역량 발휘 기회를 부여하고 미래 인재를 육성할 것’을 직원들에게 명시했다.
이런 인사원칙으로 ‘햇병아리’ 같은 젊은 직원들이 본점으로 대거 전입됐다. 본점 근무 경력이 없는데도 팀장으로 갓 승진한 직원들도 입사 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본점에 들어오는 사례도 있었다. 일부 간부들은 본점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부서장들이 들어온 데다 실무진까지 너무 바뀐 것에 대해 걱정했지만 무리 없이 일은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본점 순환근무는 직원들에게 좋은 경험이자 기회가 됐다. 윤 이사장은 “잠깐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눈을 질끈 감고 원칙을 지키겠다는 내 고집으로 이런 원칙은 임기 내내 지켜졌다”고 회고했다.
●이동 중에도 인사기록 카드 꼼꼼히 읽는 이사장
윤 이사장은 새로운 일을 거창하게 벌이는 것보다는 자신이 먼저 신용보증기금 가족의 일원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원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눈높이를 맞추는 데 집중했다. 본점 부서는 물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영업점을 찾아가 직원들과 얘기를 나눴다. 노조 행사나 청년이사회 등 직원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엔 최대한 참석했다. 기차든 자동차든 이동 중에는 만나게 될 직원들의 인사기록 카드를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읽었다. 인사카드를 미리 읽고 직원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면 기억에 훨씬 오래 남았다. 책만 보는 것보다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면 교육 효과가 더 큰 것과 같은 이치다.
직원들을 만나보니 공기업이어서 안정적인 고용에 급여도 높아 만족도가 매우 높은 줄 알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직원들이 비연고지 근무나 잦은 인사이동에 불만이 팽배했다. 구조적인 문제였다. 서울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직원이 많지만 영업점이 전국에 산재해 미스매치가 있었다. 수도권에 근무 지원자가 넘쳐난 반면 지방에는 근무 희망자가 늘 부족했다. 2014년 본점이 서울 마포에서 대구로 이전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는 자리는 400개인 데 반해 희망자는 약 700명, 서울만 해도 300명 정도는 본인이 원하지 않는 곳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반면 대구 경북은 본점을 포함해 근무자리가 470개나 되지만 희망자는 160명에 그쳤다. 310명은 원하지 않더라도 이 지역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다.
윤 이사장은 승진 인사에선 개인의 경력은 물론 평판이나 조직 기여도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반면 이동 인사는 개인의 거주지, 생활권, 경력, 직무 경험 등을 반영해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산시스템이 낡아 2500여명의 직원들 인사 데이터를 인사 담당자들이 직접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사 담당자의 주관이나 실수를 막기 위해 2020년 4월 전산시스템 재구축 작업에 착수해 인사를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인사평가나 자기 신고, 직원별 경력, 연수, 희망 직무, 직무만족도 등의 데이터를 쌓았다. 재량권 보다는 데이터와 시스템이 바탕이 되는 객관적 인사를 선호하는 그의 인사 철학에 따른 것이었다.
●기피 근무지를 기록하라
윤 이사장은 이동 인사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별 근무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신고를 할 때 희망 근무지 뿐 아니라 ‘기피 지역’도 함께 입력하라고 지시했다. 어차피 모두가 원하는 곳으로 발령을 낼 수 없으므로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피하도록 제도적으로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인사부에선 직원들의 기피지를 최대한 반영하도록 했다. 직원들은 자기 신고 입력 화면에 새로운 입력 칸이 생긴 것을 보고 회사에서 인사제도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경영을 자주 한 윤 이사장은 직원들 인사카드를 이동 중에 꼼꼼히 보는 습관이 들었다. 직접 만나는 직원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직원들의 경력 경로(career path)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번은 한 직원의 전공과 근무 경력이 눈에 띄어 지점장에게 직원에 대한 평을 부탁하니 성실하고 꼼꼼하며 일도 잘 하고 성격도 좋은 직원이라고 했다. 지점장에게 인사를 할 때 본점 근무를 추천해보라고 했다. 윤 이사장으로선 호의적인 제안이었지만 대답은 180도 달랐다.
“본인이 알면 놀라 펄쩍 뛰며 두고두고 저를 원망할 것입니다.”
알고 보니 본점 근무를 서로 기피하는 것이었다. “저는 지점이 체질입니다”라고 얘기하는 직원도 있었다.
‘아니, 본점 근무를 해보지도 않고 본인이 지점 체질인지 제대로 알 수가 있나? 이래서야 조직이나 직원이 발전할 수 있겠나’
윤 이사장은 아무래도 현장에서 같은 업무만 하다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내 팀과 지점만 생각하게 돼 조직 구성원으로 개인적 성장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당장 편하다고 해오던 일에만 안주하는 직원에겐 성장이나 발전이 제 발로 찾아올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인 것처럼 ‘한번 본점 직원은 영원한 본점 직원’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실제로 본점에 오래 근무하는 직원에겐 ‘회전문 인사’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기도 했다. ‘회전문 인사’든 ‘상석하대(上石下臺·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인사’든 지속가능성에 대해선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본점 근무의 의무
신보 전체 직원 중 본점 근무 경력이 없는 직원은 54%에 그쳤다. 이들의 평균 본점 근무 기간은 4.5년이었다. 직급별로 보면 66%가 5급 때 처음 본점 근무를 시작했고, 3급이 돼서야 본점 근무를 하는 직원은 26명으로 본점 근무자의 3%에 불과했다. 지점에는 20년이 넘는 경력에도 본점 근무 경험이 없는 직원들이 수두룩했다. 지점 직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처음엔 큰 꿈을 갖고 본점 근무를 신청했지만 적당한 시기에 못하다 보니 나중에 본점에 들어가더라도 후배들한테 업무를 배워야 하는 민망한 상황이 돼 본점 근무 자체를 기피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점에서는 본점 근무를 두고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본점 근무자들만 계속 본점에 근무하면서 주요 보직을 차지한다는 노조의 불만도 듣게 됐다.
고심 끝에 윤 이사장은 인사 담당 이사와 부서장에게 다음과 같이 전달했다.
“누구든 입사 후 10년 내에는 최소 한번씩 본점 근무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합시다. 본점과 지점 간 상호 이해도를 높이고 본인의 적성과 역량을 확인하는 차원에서라도 누구든 한번씩은 본점 업무를 경험해야 합니다. 본점 근무를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자기가 본점 체질인지 영업점 체질인지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주니어 시절에 본점에 와보고 싶었는데도 올 수 없게 돼 직장 생활 내내 본점 업무를 한 번도 하지 않게 됐다면 인사를 잘못한 것입니다. 당장 다음 인사 때부터 반영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신보 직원들은 국민의 4대 의무인 국방 근로 교육 납세 의무에 이어 ‘본점 근무의 의무’라는 다섯 번째 기본 의무를 부여받게 됐다. 2020년 1월 정기인사에서 윤 이사장의 이 같은 방침에 따라 본점으로 진입한 직원의 절반이 넘는 54%가 입사 후 처음으로 본점에 근무하게 됐다. 인사 담당 부서에는 본점 근무 직원들의 고생을 감안해 인사고과에 가점을 주는 인센티브도 도입했다. 본점 경험이 전혀 없는 직원들이 늘어나다 보니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 남아 있는 직원들만 고생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궤도를 이탈하는 일 없이 순항을 이어갔다.
●4년 동고동락한 이사장, 노조의 이례적 환송
윤 이사장은 임기 3년을 마치고 연임돼 2022년 9월까지 1년을 더 했다. 그의 경영성과는 인정을 받아 취임 전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C등급이던 것이 취임 첫해인 2018년엔 7년 만에 A등급을 받았다. 2020년과 2021년에도 A등급을 받았다. 윤 이사장의 경영은 노조와 상생을 하면서 얻은 협력적 노사관계의 결과였다.
신보 노조는 사내 게시판에 노조의 감사패 전달 소식을 전하며 “신용보증기금에 보여준 남다른 애정과 철학, 그간의 업적과 노고, 노사 상생의 동반자적 협력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헤드라인에 올렸다. 퇴임하는 공기업 사장에게 노조가 감사패를 전달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경제 관료 출신인 윤 이사장이 자신의 신보 이사장 4년을 기록해 책으로 펴낸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과 지방을 합쳐 공공기관장 자리는 800개 가까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 자리가 인생 최고의 목표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잠시 쉬었다 가는 정류장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간의 노력에 대한 인정이자 영광의 자리일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마음으로 버티는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저 쉬면서 사회생활 은퇴를 준비하는 자리로 여기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관장의 리더십과 본인의 자리에 대한 인식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임기 동안 반드시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공공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국민은 공공기관의 시작이자 끝인 것입니다.”
그는 “나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공공기관장들과 내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며 “후임 공공기관장들이 나의 경험으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긴 여정을 함께 해준 신용보증기금 임직원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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