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69)과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교수(69), 필립 딥비그 워싱턴대 교수(67) 등 은행과 금융위기 연구에 기여한 미국 경제학자 3명이 공동 수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한 전례 없는 유동성 시대를 거쳐 올 들어 연준을 비롯한 각국의 공격적인 긴축 행보 속에 세계 경제의 위기감이 높아진 것이 이들의 수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0일(현지 시간) “세 사람은 금융위기 동안 거시경제에서 은행의 역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은행 시스템의 붕괴를 막는 것이 왜 중요한지 보여줬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의 연구는 2008∼2009년 금융위기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노벨경제학상 버냉키, 美연준 의장때 3조달러 풀어 금융위기 진화
노벨경제학상 3人 공격적 돈풀기 ‘헬리콥터 벤’ 별명… 정책 실무자로선 이례적 수상 “양극화-자산 거품 불러” 지적도 공동 수상 다이아몬드-딥비그 교수… 뱅크런 막을 유동성 공급 등 연구
수상자 3명 중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헬리콥터 벤’으로 불리는 버냉키 전 의장이다. 그는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뒤를 이어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연준 의장을 지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끌어내린 데 이어 중앙은행이 국채 등을 사들여 시장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사상 초유의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리는 것처럼 세 차례의 양적완화를 통해 무려 3조 달러가 넘는 돈을 풀어 위기를 진정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순수 경제학자나 기술 혁신, 기후변화, 빈곤 등 비경제 이슈를 경제학과 접목한 학자인 반면에 이번에 연준 의장 출신의 정책 실무자가 이례적으로 상을 받게 됐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하지만 버냉키 전 의장은 1930년대 대공황을 깊이 연구한 학자 출신이기도 하다. 1953년 미 조지아주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버냉키는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대를 거쳐 프린스턴대 교수를 지내면서 1930년대 대공황과 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 과정에서 은행의 연쇄 도산이 경제 위기에 미친 영향을 집중 연구했다.
‘버냉키 프랭크 경제학’ 원서를 번역한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버냉키는 대공황 당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썼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내용의 실증적 연구를 많이 했다”며 “이런 연구를 기반으로 연준에서 양적완화를 과감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경제위기 소방수’로 활약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미국 자산시장 등 선진국에만 집중돼 양극화를 부추겼고 당시 형성된 자산시장 거품이 지금도 미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버냉키 전 의장은 현재 브루킹스연구소 석좌연구원으로 있다.
올해 5월에는 저서 ‘21세기 통화정책’ 출간을 앞두고 진행한 현지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후임인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직격탄을 날려 화제를 모았다. 그는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뒤늦게 대응한 것은 실수였다”며 “그들도 동의할 것”이라고 했다. 또 향후 경기 전망에 대해선 “내년이나 후년에 성장률이 낮아지고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높을 것”이라며 “그게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언급했다.
다이아몬드와 딥비그 교수는 뱅크런(예금 인출 사태)이 발생하는 이유와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경제학적으로 규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뱅크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예금보험을 보장하고 은행에 유동성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날 수상 발표 이후 기자회견에서 “금융위기는 사람들이 금융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며 “통화정책이 투명하게 운영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수상자 3명은 상금 1000만 스웨덴크로나(약 12억6360만 원)를 3분의 1씩 나눠 받는다. 경제학상을 끝으로 올해 노벨상 6개 분야의 수상은 모두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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