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 씨는 2년 전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4억6600만 원과 신용대출 1억 원을 받아 서울에 있는 14억 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의 결과 A 씨는 매달 원리금으로 224만 원을 갚았다. 이후 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뛰면서 A 씨가 내는 원리금은 최근 304만 원으로 불었다. 12일 한국은행의 빅스텝이 반영돼 대출 금리가 0.5%포인트 더 오르면 A 씨가 상환하는 원리금은 322만 원까지 불어난다. 2년 새 월 상환액이 98만 원 급증하는 것이다.
10년 만에 찾아온 ‘기준금리 3%’ 시대에 4345조 원 넘는 빚을 짊어진 가계와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경기 침체 우려 속에 고금리 파도가 덮치면서 빚으로 연명해온 취약 가구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기업(좀비기업)들이 줄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1년 2개월 새 가계 이자 33조 원 급증
12일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오를 때 가계대출자의 이자 부담은 6조5000억 원 늘어나는 것으로 전망됐다. 한은이 금리 인상에 본격 시동을 건 지난해 8월 이후 1년 2개월 동안 기준금리가 2.5%포인트 오른 것을 감안하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33조 원 급증한 것으로 추산된다. 가계대출자 1인당 연간 164만 원의 이자를 더 내야하는 셈이다.
이날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혼합형)는 연 4.89~7.176%에 이른다.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된 만큼 주담대 금리가 연내 8%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세대출(현재 6.6%)과 신용대출 금리 상단(6.77%)도 연 7%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가파른 금리 인상 속에 팬데믹 시기를 대출로 버텨온 저신용·저소득층,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과 상환 능력이 부족한 20, 30대 청년층의 부실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금융사 3곳 이상에서 대출받아 빚을 돌려 막기 하는 다중채무자도 6월 말 현재 450만9000명(598조 원)에 이른다. 김동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 상승과 집값 하락, 경기 침체 우려가 겹친 상황에서 영끌에 나선 젊은층, 코로나19 피해가 큰 자영업자 등 약한 고리가 먼저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 금리 충격에 한계기업 도산 우려
최근 증가세가 둔화된 가계부채와 달리 기업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의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오를 때 기업 이자 부담은 6조1000억 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고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맞물려 급증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산하는 한계기업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3년 연속 이자비용보다 영업이익이 적은 한계기업의 비중은 2019년 14.8%에서 올해 최대 18.6%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기준금리가 3%로 인상됐을 때 한계 소상공인은 124만2751곳에 이를 것으로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내다봤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금리가 성장률을 상회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에서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발생하고 이것이 금융시장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일시적으로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이 쓰러지지 않도록 정부는 정책자금 확대 등 금융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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