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전북 정읍시 SK넥실리스 5공장. 지름 3m, 길이 2m 크기의 드럼통 22대가 제각기 뱅글뱅글 돌며 노란빛의 얇게 편 구리막을 만들고 있었다. 배터리 소재인 동박이다. 3박 4일 동안 돌돌 말아 최장 77km 길이로 완성한 롤은 무게가 6t에 달한다. 이를 무인 운반차가 창고로 실어 나르면 천장의 크레인이 집어 올려 가지런히 나열한다.
버튼 한 번으로 기계가 알아서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이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인원은 고작 3∼4명. 김승민 SK넥실리스 DT담당은 “5공장은 자동화율이 높고 공정이 안정적이어서 사람의 손길이 거의 필요 없다”고 말했다.
SK넥실리스는 지난해 판매량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 22%(SNE리서치)로 세계 1위 동박 생산업체다. 지난해 6월 연간 생산량 9000t 규모의 5공장을 준공했다. 올 1월 같은 크기의 6공장도 완공하면서 정읍 공장 전체 생산능력은 5만2000t으로 확대됐다. 동박 5만 t이면 전기차 150만∼200만 대에 필요한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물량이다.
동박은 배터리에서 전기를 저장·방출하는 음극재의 필수 소재다. 전기를 모아서 흘려보내는 통로 역할을 한다. 얇게 만들수록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터리 무게를 줄이면서도 용량은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SK넥실리스는 2019년 세계 처음으로 4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동박을 양산했다. 4μm는 머리카락의 30분의 1 두께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3사와 일본 파나소닉, 중국 CATL 등 글로벌 주요 배터리 업체들이 대부분 SK넥실리스의 동박을 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SK넥실리스도 국내외 공장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2025년까지 동박 생산량을 연 25만2000t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생산량을 3년 만에 5배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SK넥실리스는 지난해 7월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 연산 5만 t 규모의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올 6월에는 폴란드 스탈로바 볼라에 같은 규모의 공장을 착공했다. 북미 공장의 경우 연내 설립 부지를 확정할 방침이다. 북미 지역은 특히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 등으로 역내 수요가 빠르게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재홍 SK넥실리스 대표는 “요즘 동박 시장을 보면서 마치 미국 서부 개척시대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앞으로 가져갈 수 있는 땅들이 널려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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