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에서 작은 식당을 하는 김모 씨(38)는 지난해 1000만 원이 조금 넘는 수익을 벌어들였다. 3년 전만 해도 3000만 원 이상은 손에 쥐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을 피해갈 순 없었다. 은행 개인사업자 대출, 보험 약관 대출 등으로 7000만 원 넘게 빚을 내며 버텼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생활비, 자녀 교육비 등이 부족했던 김 씨는 결국 얼마 전 저축은행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저축은행 대출 금리가 10%가 넘고 기존 대출 이자도 부담되지만 어쩔 수 없이 500만 원을 더 빌렸다”며 “빚을 어떻게 다 갚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한국은행의 연이은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으로 대출 금리가 치솟는 가운데 올 들어 중·고소득 가계는 부채 줄이기에 나선 반면 김 씨 같은 저소득층은 오히려 대출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고물가,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생계형 대출을 늘린 저소득층,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이 고금리 시대의 부실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3일 금융감독원이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가계대출을 받은 가구당 평균 대출액은 9387만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9342만 원)보다 0.5% 늘어난 규모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말(8388만 원)과 비교하면 11.9% 증가했다.
가구당 평균 대출액을 가계 추정소득 모형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올 들어 연소득 3000만 원이 안 되는 저소득 가구에서만 대출이 늘었다. 연소득 1000만∼2000만 원 미만 가구의 평균 대출액은 지난해 말 3026만 원에서 올해 8월 말 3166만 원으로 140만 원 불었다. 2000만∼3000만 원 미만 가구는 5213만 원에서 5224만 원으로 11만 원 늘었다. 금융 이력이 부족해 소득이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 이른바 ‘신파일러(Thin Filer)’ 가구는 304만 원이나 증가했다.
이와 달리 연소득 3000만 원 이상 가구는 평균 대출액이 일제히 감소했다. 연소득 1억 원 이상 가구는 1433만 원, 7000만∼8000만 원 미만 가구는 673만 원의 대출이 줄었다. 연소득 4000만∼5000만 원 미만 가구도 340만 원 감소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여유가 있는 중·고소득 가구는 금리 인상기를 맞아 대출을 줄이며 자산 관리에 나선 반면 취약계층은 물가 급등, 경기 악화 등이 겹치면서 오히려 생계형 대출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올 들어 은행 가계대출은 감소세를 이어간 반면 중·저신용자가 많이 찾는 저축은행 대출이 늘어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은에 따르면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7월 말 904조320억 원으로 올 들어 6조 원 넘게 감소했다. 반면 저축은행 가계대출은 40조395억 원으로 2조1800억 원 넘게 불었다.
8월 현재 은행권의 신규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연 4.76%이지만 저축은행은 10.62%나 돼 생계형 대출에 나선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의원은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예고된 만큼 금융 복지의 관점에서 저소득층 채무 재조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실 출근길에 “금리 인상에 따라 가계 채무자들이 부실화되거나 도산하는 일이 없도록 적절한 신용정책을 만들어 관리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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