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기 둔화’ 경고음이 5개월 연속 지속되고 있다. 내수는 일부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높은 수준의 물가와 수출 회복세 약화 등으로 경기 하방 위험의 장기화가 우려된다.
기획재정부는 14일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0월호에서 “우리 경제는 고용과 대면 서비스업 회복으로 내수가 완만한 개선을 이어가고 있으나, 대외 요인 등으로 높은 수준의 물가가 지속되고, 경제 심리도 일부 영향을 받는 가운데 수출 회복세 약화 등 경기 둔화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요국의 금리 인상 가속화 기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확전 우려, 중국 봉쇄 조치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세계 경제의 하방 위험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지난 6월 올들어 처음으로 ‘경기 둔화 우려’ 표현을 사용한 뒤 이달까지 5개월 연속 같은 진단을 내렸다. 특히 이달에는 ‘경기 둔화 우려’에 ‘지속’이라는 표현을 덧붙여 이 같은 하방 국면의 장기화 우려를 내비쳤다. 지난달 평가와 비교해 ‘에너지 수급 불확실성’ 표현이 빠진 것도 눈에 띄었다.
이승한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에너지 수급 불확실성’ 표현이 빠진 것과 관련, “유럽 액화천연가스(LNG)가 현물 가격 기준으로 지난 한 달 동안 거의 30% 정도 빠졌다”며 “겨울철 공급에 대한 전망이 조금 더 개선이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정부는 에너지 수급 불확실성을 굉장히 중요한 리스크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과장은 경기 판단 기조를 5개월 연속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수출 둔화의 모습이 지금 계속 나타나고 있고, 달이 갈수록 수출 둔화 폭들이 점점 더 가시화되고 있는 모습”이라며 “일단 ‘경기 둔화’에 대해서 좋아지는 부분은 지금 없다”고 설명했다.
경기 둔화 우려는 지표상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30.2원으로 8월 말(1337.6원)보다 6.5%나 올랐다. 지난해 말(1188.8원)과 비교하면 20.3% 급등한 수준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과 비교해 5.6% 상승했다. 6월과 7월에 6%대까지 치솟았던 물가는 국제유가 하락에 따라 2개월 연속 5%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석유류·농산물 등 공급 측 변동 요인을 제거해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는 4.5% 상승했다. 배추·무 등 채소류 가격상승이 계속되며 농축수산물 값은 1년 전과 비교해 6.2% 오르며 높은 수준을 지속했다.
체감 물가를 나타내는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과 비교해서 6.5%가 올랐지만, 지난달(6.8%)과 비교해서는 상승 폭이 축소됐다. 기상 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55개 품목의 물가를 반영하는 신선식품지수도 12.8%올랐지만, 지난달(14.9%)보다 상승 폭이 줄었다.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8월 소매판매는 내구재(4.2%)와 준내구재(2.2%), 비내구재(5.2%) 등의 소비가 모두 증가하면서 전월 대비 4.3% 증가해, 지난 3~7월 이어졌던 다섯 달 연속 감소세를 끊어냈다.
이는 코로나19 일상회복과 이른 추석에 따른 차례상 및 선물 준비로 음·식료품 수요가 증가하고, 승용차와 같은 내구재의 공급 물량 확보 문제가 일부 해소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소비심리에도 이러한 상황이 반영되는 모습이다. 9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1.4로 7월(86.0), 8월(88.8)에 이어 3개월 연속 상승세다.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소비심리를 비관적으로 본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 5월(102.6) 이후 100 아래를 유지하고 있다.
2분기 설비투자(GDP잠정치)도 전년 동기와 비교해 0.5% 증가했다. 전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3포인트(p) 하락한 것은 향후 설비투자에 부정적 요인이지만, 국내기계수주 증가 등은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재부는 전망했다.
지난달 수출액(통관기준 잠정치)은 석유제품·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전년 동월 대비 2.8% 증가한 574억6000만 달러를 기록해 주춤한 모습이었다. 조업일수를 고려한 하루 평균 수출액은 26억7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2%만 늘었다.
특히 올해 수출 증가율은 1분기 18.4%, 2분기 13.0%로 두 자릿수를 유지해왔지만 3분기는 6.0% 한 자릿수로 내려앉았다. 하루 평균 수출액도 26억7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0.4%만 증가해 저조한 흐름이었다.
이 과장은 “국내 부분도 국내 부분이지만,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이 워낙 가파르게 빠르게 인상을 하고 있다”며 “그것들이 결국은 다른 나라들의 경기에 더 큰 영향을 미쳐서 우리 수출 쪽에서 크게 영향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같은 영향 등으로 8월 산업 생산도 지난달과 비교해 0.1% 감소했다. 광공업(-1.8%), 공공행정(-9.3%) 등이 부진했으며, 서비스업(1.5%), 건설업(5.0%)은 선방했다.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0.5포인트(p) 오르며 4개월 연속 상승했지만, 앞으로의 경기를 예고하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과 비교해 0.2p 하락했다.
고용시장은 훈풍이 이어졌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2838만9000명으로 1년 전보다 70만7000명 늘었다. 같은 달 기준으로 보면 1999년(93만5000명) 이후 23년 만에 최대 증가 폭이다.
실업자는 70만4000명으로 전년 대비 5만2000명 감소했으며 실업률은 2.4%로 0.3%p 하락했다. 실업률 역시 1999년 6월 관련 통계 집계 이래 동월 기준 역대 최저 수준이다.
이 과장은 고용 전망과 관련, “현재로서는 엄청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기저효과가 있다”며 “경기 판단을 계속 조금씩 둔화될 것이라 보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의 영향이 반영돼서 숫자 자체는 조금 낮아지는 모습들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기재부는 “물가와 민생 안정에 총력 대응하면서 민간 경제활력 제고와 리스크(위험)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경상수지 체질개선, 구조개혁 과제 등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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