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영업익 81% 증가 호실적에도
목표 투자액 400억달러 → 360억달러
TSMC CEO “내년 업황 후퇴할 수도”
글로벌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올해 설비투자 목표치를 10% 하향 조정했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을 중심으로 감산 또는 투자 축소 움직임이 확산되는 가운데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분야까지 ‘혹한기’ 대비에 나선 것이다. 세계 경기 침체 위기가 PC, 스마트폰을 넘어 슈퍼컴퓨터,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으로까지 확대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1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전날 3분기(7∼9월) 실적 발표에서 연말까지 설비투자액을 360억 달러(약 51조4000억 원) 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목표치였던 400억 달러의 90%만 집행하기로 한 것이다.
TSMC는 3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6131억 대만달러, 3103억 대만달러였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7.9%, 영업이익은 81.5% 증가했다. 같은 분기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매출액을 넘어선 데다 영업이익은 두 배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내년에도 TSMC의 성장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산업 전반적인 업황은 후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도 TSMC가 호실적에도 설비투자를 줄이기로 한 배경은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경기 침체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스마트폰, 컴퓨터 등 전자기기 소비 감소로 인한 타격은 메모리뿐만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도 피해 갈 수 없다”며 “TSMC의 매출 절반이 모바일칩(AP)에서 나오는 만큼 설비투자 축소는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겨울’… 美 마이크론 투자 30% 감축-대만 TSMC도 속도조절
반도체 덮친 경기침체 AI 등에 쓰이는 비메모리까지… 업체들 본격 허리띠 졸라매기 美의 對중국 수출규제도 한몫… 삼성은 “인위적 감산 없다” 밝혀 업계 “인위적 단서… 다양한 가능성”
글로벌 경기 침체의 여파는 최근까지 주로 D램이나 낸드플래시 가격 하락 등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46%를 점유하는 1위 삼성전자는 3분기(7∼9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2% 줄었다. 3위인 미국 마이크론도 6∼9월(자체 회계연도 4분기) 매출이 66억4000만 달러(약 9조50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0% 감소했다. 메모리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 공급 과잉에 따른 재고 증가까지 맞물린 결과다.
각 기업은 본격적인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마이크론은 내년 설비 투자를 30% 줄이기로 했다. 특히 반도체칩의 핵심 재료인 웨이퍼 장비에 대한 투자를 50%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키옥시아(옛 도시바 메모리)는 이달부터 웨이퍼 투입량을 30% 줄여 생산량 조정에 들어갔다.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인텔이 이달 내 수천 명의 인력을 구조조정할 예정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여기에 TSMC마저 투자 속도를 조절하기로 한 것은 경기 침체 여파가 이미 전방위적으로 확산한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주요 고객사인 애플, AMD, 엔비디아 등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들의 주문량이 당분간 줄어들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TSMC는 2분기(4∼6월) 기준으로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이 53%에 이른다.
TSMC는 특히 최첨단 기술인 5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 매출이 2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1년 전 18%보다 10%포인트 커졌다. 7nm(26%)까지 더하면 총 매출액의 절반이 넘는다. TSMC의 투자 감축이 일반 소비재를 넘어 첨단 산업마저도 불황의 터널로 들어섰다는 의미로 읽히는 까닭이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최근 미국이 슈퍼컴퓨터나 인공지능(AI) 반도체칩의 대(對)중국 수출을 규제하기로 한 것도 TSMC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했다. 블룸버그 산하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블룸버그인텔리전스는 TSMC가 중국 고객사에 첨단 반도체를 제공할 수 없게 되는 만큼 연 매출의 10% 이상을 잃을 수 있다고 추산했다.
국내 기업들은 아직 투자 축소나 감산 방침을 밝힌 적이 없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삼성 테크데이 2022’에서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는 게 (삼성전자의) 기조”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감산 계획이 없다고 했지만 ‘인위적’이란 단서를 달았기에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고 했다.
26일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SK하이닉스의 행보도 주목된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장은 7월 2분기 실적 발표 당시 “시장 수요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내년 생산량과 투자 수준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반도체 수급 불균형의 타개책은 결국 업체들의 투자 축소와 감산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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