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대한항공 여객기(KE631편, A330-300)가 필리핀 세부 막탄 공항에서 착륙하던 중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세부 막탄 공항의 계기착륙시설(lLS)이 작동이 중단돼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낙후된 공항 시설과 악천후, 브레이크 시스템 고장 등의 ‘겹악재’ 속에서도 단 한 건의 인명피해도 없었던 건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대한항공 KE631편(에어버스 A330-300)은 23일(현지 시각) 세부 막탄 공항에 착륙하던 중 비정상 착륙했다. 항공기는 활주로를 벗어나 바깥 풀밭에 멈춰 섰다. 항공기에는 승객 162명과 승무원 11명이 타고 있었다. 현재까지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정상 착륙으로 인해 기체 일부가 손상됐다.
본보가 공항의 노탐(NOTAM, 운항정보 공시)을 확인한 결과 세부 막탄 공항의 ILS는 9월 2일부터 11월 2까지 ‘U/S(Unserviceable, 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확인됐다. ILS는 착륙 중인 항공기에 활주로 중심선 활공각 및 위치정보를 제공하여 항공기가 안전하게 자동으로 활주로에 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시설이다. 즉, 각종 전파 등을 이용해 항공기가 자동으로 활주로에 잘 맞춰서 착륙할 수 있게 하는 핵심 안전시설이다.
세부 막탄 공항은 레이더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조종사와의 교신을 통해서 고도 등의 정보를 받으며 관제하기도 한다. 기체 GPS와 사전에 약속된 착륙 경로, 그리고 조종사의 육안에 의존해 착륙해야 하는 환경이었다는 뜻이다. 특히 이날 노탐에는 ‘활주로 일부에 포트홀(Pothole, 움푹 팬 곳)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공지까지 있었다. 위험요소가 많았다는 얘기다.
날씨도 문제였다. 사고 당일 공항 주변의 날씨 정보에 따르면 공항 상공에는 소나기성 적란운이 크게 형성돼 있었다. 이따금 강한 돌풍도 불었다. 시야가 몇 백 m 앞도 채 보이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항행시설이 제대로 작동했어도 착륙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해당 항공기 기장은 처음 착륙을 시도했을 때 활주로 시야가 보이지 않아 복행(고어 라운드, 착륙을 포기하고 재상승하는 것)을 했다. 곧바로 두 번째 착륙을 시도했을 때는 강한 하강 기류(윈드시어)를 만났다고 한다. 항공기 바퀴가 활주로에 거칠게 닿을 정도로 강한 하강 압력이 가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리하게 착륙을 감행할 경우 항공기가 제대로 착륙하지 못할 수 있기에, 기장은 다시 복행을 결정했다. 항공기 바퀴가 지면에 세게 닿았을 때 기체가 충격을 받아 엔진브레이크 계통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 2차 복행 이후 유압 장치를 비롯한 엔진브레이크 계통에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생겼다는 메시지가 표시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연료 등이 얼마나 남아 있었는지 등을 살펴봐야겠지만,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던 만큼 당시에서는 착륙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항공기 기장은 세 번째 착륙을 하면서 항공기의 자동 브레이크의 도움 없이 매뉴얼 브레이크(양발로 브레이크를 잡는 것)로 항공기를 멈춰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정상적인 활주로였다면 매뉴얼 브레이크로도 안전하게 항공기를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악천후 속에서 물이 고인 활주로가 미끄러워 제동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한 기장은 “왼발과 오른발로 번갈아 가면서 브레이크를 잡는 것이 있는데, 강한 가속 상태에서 자칫 잘못 조종했으면 타이어가 손상을 입고 비행기가 뒤집히거나 활주로 옆으로 이탈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안 좋은 상황은 다 겹쳤다. 활주로를 지나쳐서 착륙하는 오버런을 했지만, 최악의 상황이 될 뻔한 상황에서 인명 피해 없이 최선의 결과를 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대한항공 측은 “항공기가 멈춘 이후 객실 사무장의 지시에 따라 차분하게 따라 큰 혼란 없이 항공기에서 비상 탈출을 했으며, 노약자 및 휠체어 필요 일부 승객들은 공항 내 진료소(클리닉)로 이동해 건강 상태 확인 후 큰 문제 없어 귀가했고 일부는 호텔로 향했다”고 밝혔다.
세부 공항은 활주로가 하나여서 사고 이후 공항 이용에 차질이 생기면서 세부로 향하는 다른 항공기들은 세부 공항을 우회하거나, 출발 일정을 미루고 있다. 국토부는 항공정책실장을 반장으로 한 사고수습본부를 설치했으며, 현지 공관 및 항공사 등과 연락 체계를 구축해 피해 상황을 파악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이수근 대한항공 안전보건 총괄 부사장을 책임자로 하는 총괄대책본부를 꾸려 승객 조치 및 후속 조치, 사고 처리 등을 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우기홍 사장 명의 사과문에서 “착륙 중 활주로를 지나쳐 정지했다”며 “현지 항공 당국 및 정부 당국과 긴밀히 협조해 조기에 상황이 수습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