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0대 반도체 기업 중 한국 기업은 3곳에 불과하고 4년 전과 비교해 시가총액 순위와 수익성이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전 세계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고 있다. 주요국 대비 과도한 기업들의 세 부담 완화와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육성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4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시총 상위 100대 반도체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SK스퀘어 등 3곳이 포함됐다. 중국 42곳, 미국 28곳, 대만 10곳, 일본 7곳 등 주요 경쟁국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는 평가다.
100대 기업에 들어간 한국 기업들의 시총 순위는 일제히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2018년 1위였으나 올해 기준 대만 TSMC(1위)와 미국 엔비디아(2위)에 밀려 3위였다. SK하이닉스는 10위에서 14위로 떨어졌다. 지난해 11월 SK텔레콤에서 인적 분할한 SK스퀘어는 출범 당시 80위였다가 현재 100위로 하락했다.
수익성은 ‘나 홀로’ 악화됐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2018년 16.3%에서 지난해 14.4%로 1.9%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미국은 3.9%포인트, 일본은 2.0%포인트, 대만은 1.1%포인트 상승했다.
수익성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세 부담 확대가 꼽힌다. 전경련 분석에 따르면 법인세 부담률은 한국이 26.9%로 가장 높았다. 미국(13.0%), 대만(12.1%)의 2배 수준이다. 일본은 22.3%였다. 한국 기업의 법인세 부담률은 2018년 25.5%로 4개국 중 이미 최고였는데 3년 사이 1.4%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법인세 부담률은 3.4%포인트 감소했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매년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투자를 단행하며 글로벌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경쟁국보다 큰 세 부담이 누적되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각국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킨게임’에 돌입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1, 2위를 다투는 대만 TSMC는 올해 설비투자에만 360억 달러(약 51조4000억 원)를 쏟을 예정이다. TSMC의 투자는 경기 침체 우려에 당초 9월 계획했던 400억 달러보다 10% 줄었지만 파운드리에만 16조 원을 투입하는 삼성전자의 3배 이상으로 많다. 파운드리 후발주자인 인텔도 적극 사업에 뛰어들며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투자가 절실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각종 불리한 조건과 규제에 둘러싸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한국 반도체 기업의 영업현금흐름 대비 설비투자 규모는 63.1%로 가장 높았지만 대만의 61.4%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만 대표 기업인 TSMC는 파운드리에 집중하면 되지만 메모리, 시스템 반도체까지 키워야 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추가 재원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클 수밖에 없다.
또 미국은 올 7월 반도체과학법을 통과시켜 시설·장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25% 적용하기로 했다. 한국은 올 초 국가첨단산업법을 제정해 세액공제 6%를 마련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계 목소리를 반영해 세액공제를 20%까지 확대한 K칩스법이 발의됐지만 여야 정쟁으로 계속 표류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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