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이 예상하는 가계의 신용위험이 ‘카드 사태’가 일어났던 2003년 이후 19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국내 은행이 예상한 올 4분기(10∼12월) 가계 신용위험지수는 42로 3분기(7∼9월·33)보다 크게 증가했다. 이는 2002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두 번째로 높고, 2003년 3분기(4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며 경제 상황이 불안해진 2020년 2분기(4∼6월·40)보다도 높다.
가계 신용위험이 커진 것은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시중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상환에 어려움이 가중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가계의 신용위험은 경기 둔화 가능성에 따른 대출자의 상환능력 저하와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 증대 등으로 3분기에 이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대내외 경제 여건이 불확실해지면서 기업들의 신용위험도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올 4분기 중소기업 신용위험지수는 31로 1년 전인 지난해 4분기(12)보다 크게 뛰었다. 대기업 신용위험지수도 같은 기간 3에서 17로 급등했다. 한은 측은 “중소기업은 실적 부진과 일부 기업의 재무건전성 악화 등으로 신용위험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설명했다. 채무자의 상환 능력이 악화될 우려가 커지면서 비은행 금융기관의 대출자 신용위험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비중이 높은 저축은행의 경우 부동산 등 담보 가치의 하락이 신용위험 증가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처럼 기업들의 신용 위험이 커짐에 따라 국내 은행들은 당분간 기업대출을 조일 것으로 전망됐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4분기 대출태도지수는 13으로 3분기(6)보다 증가했다. 그러나 이 중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태도지수는 각각 ―3으로 비교적 낮게 조사됐다.
은행들이 이처럼 대출 문턱을 높이는 와중에도 기업들은 계속 은행 문을 두드릴 것으로 보인다. 4분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출수요지수는 각각 6과 3으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며 현금 확보의 필요성이 늘고 회사채 발행시장은 위축됨에 따라 기업들이 더욱 은행 대출에 의존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신용위험은 채무자가 상환을 불이행할 위험, 또는 거래 상대방이 도산하거나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등 신용이 악화될 위험을 말한다. 한은은 올 8월 25일부터 지난달 16일까지 국내 은행 18곳, 상호저축은행 26곳 등 총 204개 금융기관의 여신업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이번 조사 결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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