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실적-투자 악화]
3분기 영업익 전년대비 60% 급감
경기침체에 반도체 수요 위축 탓
대기업 투자 축소, 고용 악화 우려
SK하이닉스가 26일 ‘어닝 쇼크’ 수준의 3분기(7∼9월) 실적을 발표하고 내년 투자를 올해 대비 50% 이상 감축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실적을 발표한 LG디스플레이와 삼성전기 역시 내년 투자 규모를 줄일 예정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과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글로벌 금융 위기 수준으로 얼어붙고 있다. 대기업 투자가 협력사를 포함한 후방 생태계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막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용시장이 더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 매출액 10조9829억 원, 영업이익 1조6556억 원의 실적을 올렸다고 이날 공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7.0%, 영업이익은 60.3% 각각 감소했다. 전 세계 시장에서 PC와 스마트폰 소비가 감소하면서 주력 상품인 D램과 낸드 플래시 수요가 크게 줄어든 영향이다. 27일 부문별 실적 발표를 앞둔 삼성전자의 3분기 반도체부문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보다 30∼40% 정도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담당 사장은 이날 “올해 투자 규모는 10조 원 후반대로 전년 대비 증가하겠지만 내년 투자는 올해 대비 50% 이상 감축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 SK하이닉스의 투자 규모는 7조∼8조 원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침체에 LGD-삼성전기도 “투자 축소”… 中企 자금압박 가중
SK하이닉스 ‘어닝 쇼크’ 하이닉스 “일부 제품 감산할 수도… 금융위기 버금가는 투자 감축 예상” 대기업 위축에 中企협력사 타격… 전문가 “지금은 생존이 중요한 상황”
SK하이닉스는 공격적인 투자를 거듭해 왔다. 지난달 6일에도 충북 청주시에 5년간 총 15조 원이 투입되는 반도체 공장 ‘M15X’ 투자를 결정했다. 하지만 반도체 경기가 워낙 가파르게 꺾여 투자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담당 사장은 “업계의 재고 규모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예상돼 생산 증가를 위한 투자를 최소화하고 공정 전환 투자도 일부 지연할 계획”이라고 했다.
SK하이닉스는 또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량을 줄여 나갈 계획도 공개했다. 시장 수급 밸런스가 정상화되도록 일정 기간 투자 축소와 감산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대외 경영환경에 대해서도 비관적 시나리오를 언급했다. 미국의 규제로 인한 중국 우시 공장 내 장비 공급 차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중국 시장 철수 관련 언급이 나왔다. 노 사장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비상계획”임을 전제한 뒤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반입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팹(공장) 운영이 어려워질 경우 팹 매각과 장비 매각, 한국에 장비를 들여오는 것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반도체 산업이 제품 판매량 감소와 가격 하락은 물론이고 대외 여건까지 불확실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도체 외 부품업계에서도 투자 축소 움직임이 예고됐다.
LG디스플레이는 3분기 매출액이 6조771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3% 줄어들면서 7593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LG디스플레이는 “거시경제 여건의 급격한 악화로 실수요가 줄고 세트업체들의 재고 감축 및 재고 기준 강화 영향으로 패널 수요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LG디스플레이는 올해 투자를 목표치 대비 1조 원 이상 축소하고 내년에도 줄여나갈 것”이라며 “액정표시장치(LCD) 국내 생산 중단 등 출구전략도 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기의 3분기 매출액(2조3838억 원)과 영업이익(3110억 원)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4%, 31.8% 줄었다. 스마트폰과 PC 등 정보기술(IT) 제품 수요가 줄어들며 실적의 발목을 잡았다. 삼성전기 역시 “올해 업황 둔화로 당초 계획 대비 투자가 소폭 줄어들 것”이라며 “내년에는 올해보다 투자가 더 줄어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실적을 발표한 주요 부품기업 중에서는 미국 애플에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는 LG이노텍만이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32.5% 오른 좋은 실적을 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들의 투자 축소는 시장이 워낙 안 좋다 보니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본다”며 “현재는 투자보다는 기업이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가 중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대기업들이 앞다퉈 투자를 줄이면 중소·중견 협력사들의 자금 압박이 더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 기조로 금융비용이 크게 늘고 있어 자금 조달력이 약한 기업들은 타격이 커진다.
경기 지역의 한 기계부품 업체 A 대표는 “연매출 12억 원 중 2억 원 넘게 이자로 나간다. 영업이익(5억여 원)에서 이자와 직원 9명 인건비를 주고 나면 적자”라고 말했다. 경남의 한 발전소 정비업체 B 대표도 “보수공사 특성상 기성대금을 받기 전까지 회삿돈으로 인건비나 자재비를 충당해야 하는데 유보금이 많지 않아 대부분 빚”이라며 “작년에 3%대 후반이었던 금리가 6%대로 2배 가까이 뛰어 은행에 만기 연장하러 가기가 무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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