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아니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회사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최근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퓨처플레이의 신임대표로 선임된 권오형 각자 대표(41)는 투자 철학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2015년 퓨처플레이에 심사역으로 입사한 그는 2018년 투자 파트 총괄을 맡으며 퓨처플레이의 투자를 이끌어왔다.
미국 메사추세츠대 엠허스트를 졸업하고 회계법인 딜로이트 보스톤 등에서 근무했던 그의 이력을 보면 회계사 길을 걷기 시작할 때부터 우수한 커리어를 밟아온 듯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왔던 그는 자발적으로 베트남 지사로 자리를 옮기고, 퇴사를 해 창업에 도전하고, 미국의 한 스타트업에서 일해보기도 했다.
권 대표는 “커리어 방향이 바뀔 때마다 0에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며 “회계법인을 퇴사한 뒤 다시 그때 연봉을 받기까지 10년이 걸렸지만 나를 알아가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과정들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딜로이트 퇴사 후 미국 보스톤에 돌아와 시도했던 창업은 그가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창업 아이템은 진로를 고민하는 사회 초년생과 각 분야의 선배들을 멘티와 멘토로서 연결해주는 서비스였다. 멘티를 모으는 것은 쉬웠지만 멘토를 할만한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은 워낙 바쁜데다 초빙 비용도 높아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에 6개월 만에 사업을 접었다.
그는 “창업 후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프로덕트 마켓 핏 문제가 아니라, 내가 창업 할 깜냥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며 “다양한 섹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투자에 더 마음이 쏠렸다”고 말했다.
사업을 접은 뒤 미국의 한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경험도 권 대표가 투자의 길을 걷는데 영향을 미쳤다. 해당 스타트업의 공동창업자 간 갈등이 생기면서 결국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CEO 겸 CTO가 퇴사를 하는 것을 옆에서 보게됐던 것.
권 대표는 “CTO가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가 이끌어왔던 사업방식을 살리면서 일을 해야 해서 팀원들의 업무 강도가 정말 심각했다”고 말했다.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그가 몸소 깨달은 창업의 필수 조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헤어지지 않을 정도의 코파운더(공동창업자)’, 다른 하나는 ‘어떤 외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확신을 가진 사업 방향성’이다. 물론 공동창업자는 없어도 되지만 사업 방향성은 중요하다.
그만큼 이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창업가가 권 대표의 기억에 강렬히 남아있다고 했다. ‘너무 많아 어느 한 곳 꼽기 어렵다’면서도 그는 조심스럽게 플렉시블 배터리 제조 스타트업 ‘리베스트’와 풀필먼트 스타트업 ‘두핸즈’를 꼽았다.
권 대표는 “카이스트 대학원 출신인 리베스트 대표는 훌륭한 연구 성과를 가진 분이었는데, 연구자에서 창업가로 가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많은 성과를 냈다. 두핸즈는 몇 년 전 물류센터에 화재가 나면서 큰 위기를 겪었는데, 그걸 이겨내는 과정을 보면서 감동과 배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투자 시장 침체기라고 일컬어지고 있지만 권 대표는 ‘이전보다 더 공격적으로 투자하겠다’고 했다. 퓨처플레이의 투자 기준을 넘어서는 스타트업이라면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곳은 많지만, 퓨처플레이는 특히 ‘1년, 5년, 10년 뒤에는 사람들이 뭐하고 살까’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하는 것 같다”며 “창업가들이 퓨처플레이로부터 투자받아야하는 필요성을 느끼도록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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