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회장 취임]
10년만에 승진… 별도 취임식 안해
첫 행보로 오늘 광주사업장 방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입사 31년 만, 부회장에 오른 지 10년 만이다.
삼성전자는 27일 오전 열린 이사회에서 김한조 이사회 의장의 발의로 이재용 신임 회장의 승진 안건을 논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고(故)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뒤 2년간 공석이었던 삼성전자의 회장 자리가 채워지게 됐다.
이사회는 글로벌 대외 여건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경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이 회장의 승진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이사회의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계열사 부당 합병 의혹 재판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 많은 국민의 응원 부탁드린다”고 짧은 소회를 남겼다.
삼성은 별도의 회장 취임식을 열지 않았다. 이 회장은 대신 25일 이건희 회장 2주기 추모식에서 사장단과 간담회를 가지며 밝혔던 각오를 담은 ‘미래를 위한 도전’이란 제목의 글로 취임사를 대신했다. 이 회장은 사내 공지글에서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듭시다. 제가 그 앞에 서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28일 회장 승진 뒤 첫 행보로 광주사업장과 지역 협력업체를 방문할 예정이다. 최근 품질 이슈가 불거졌던 세트 사업을 점검하고 협력업체와의 상생 등을 다지는 행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해 2003년 경영기획팀 상무를 거쳐 2010년 최고운영책임자(COO) 부사장에 올랐다.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했으며 이건희 회장이 병환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2014년부터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왔다.
회장으로 승진한 현재 삼성전자의 리더로서 당장 맞닥뜨린 대내외 경영 환경은 녹록지만은 않다. 삼성전자의 호황을 이끌었던 반도체 업황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고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전문 기업 TSMC 등 경쟁 업체들의 약진이 삼성의 글로벌 선두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심화에 공급망 우위를 점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격화도 삼성으로선 악재다.
이 회장은 앞으로 ‘뉴 삼성’의 간판이 될 만한 미래 먹거리 사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바이오 등을 중심으로 450조 원 규모의 투자에 속도를 내고 ‘반도체 비전 2030’을 달성해 한국 경제의 ‘기둥’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회장 직함을 가지게 된 만큼 전보다 더 과감하게 글로벌 비즈니스 파트너와 교류하고 미래 신사업 분야에서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반도체 사업에서는 메모리 부문에서 경쟁 업체들이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를 만들고, 팹리스(설계)와 파운드리 등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부문을 키워 반도체 3대 분야 모두를 주도한다는 게 삼성의 지향점이다. 재계 관계자는 “3대 분야의 반도체 시장에서 모두 시장을 선도하면 한국에 삼성전자 규모 기업 하나를 새로 만들어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제2의 반도체’로 키우려 심혈을 기울이는 바이오 산업에도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앞으로 10년간 7조5000억 원을 투입해 인천 연수구에 제2 바이오 캠퍼스를 조성할 계획이다. 글로벌 수요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 한발 앞서 투자를 단행하는 전략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 역시 11일 송도캠퍼스 4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바이오 부문에 힘을 실었다.
한편으로는 글로벌 불황을 우선 이겨내기 위해 이 회장이 ‘삼성’이라는 울타리 아래 각 사업부문을 견고하게 재정비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를 재정립하는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가 회장 승진의 배경으로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은 과거 회장 비서실과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등의 컨트롤타워를 통해 그룹 전체의 시너지를 창출해 왔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태로 2017년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뒤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금융경쟁력제고 TF, EPC(설계 조달 시공) TF 등 계열사별로 별도의 TF를 꾸려 운영해 왔다.
하지만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 삼성의 60개 계열사 간 사업 교류와 협력이 절실해졌다는 목소리가 재계 안팎에서 나온다. 이 회장의 경영 철학을 그룹에 빠르게 이식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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