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제민간항공기구(ICA0)에서 사상 처음 퇴출
한국, 8연속 ICAO 이사국 연임
대만의 ICAO 참여 두고 미-중 “으르렁”
제41차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총회가 10월 7일 막을 내렸습니다. ICAO는 UN 산하 기구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와 함께 항공업계를 이끄는 양대 기구입니다. 항공 기술·운송·시설 등의 발전과 국제 항공 규범의 증진을 위해 1947년에 설립된 기구입니다. 특히 ICAO는 3년마다 총회를 열고 이사국을 선출합니다. 이사국들은 항행위원회 설치, 부속서 심의 등 세계 항공산업을 위한 각종 업무를 수행하죠.
ICAO 이사회는 총 36개 이사국으로 구성이 되는데요. 이사국 구성원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항공업계에서는 큰 위상을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ICAO 이사회는 총 3개 그룹으로 나뉩니다. PartⅠ(파트1), PartⅡ(파트2), PartⅢ(파트3)입니다.
이번 41차 총회에서도 이사회 선출 투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투표 결과 항공업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충격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오늘 ‘떴다떴다변비행’에서는 ICAO 41차 총회의 뒷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사회 8연임 성공한 대한민국
먼저 이번 총회에서 한국은 파트3 이사국 8번 연임에 성공합니다. 향후 3년간 8번째 임기를 수행하게 됐는데요. 사실 파트3에 연임될 것이라는 건 모두가 예상한 결과였습니다. 이번 투표에서 한국이 역대 최다득표수를 넘어서느냐 마느냐가 더 큰 관심이었죠. 한국은 175개국 중 총 151표를 얻었습니다. 종전 최다득표 수(164표)를 넘어서진 못했지만 무난하게 파트3 이사국에 이름을 올립니다.
사실 한국의 항공 위상에 비춰 봤을 때, 한국이 파트3에 있는 건 참 아쉽습니다. 최소한 파트2에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한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공항과 항공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항공 여객 및 화물 처리량은 물론이고 항공 항해 관련 기술과 항공 안전 및 보안, 항공 인프라, 글로벌 항공업계에 대한 기여 등 자랑할 거리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ICAO는 국가들이 분담금을 내서 운영이 됩니다. 각국의 항공운송규모 등에 비례해 운영비를 내게 되는데요.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분담금을 많이 내는 국가입니다. 분담금만 봐서는 파트1에 있어야만 하죠.
그런데 항공 산업이 오래전부터 발전해있던 국가들이 파트1과 파트2를 꿰차고 있다 보니, 한국은 파트3에만 머무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은 ICAO에 1952년에 가입했는데 2001년에서야 파트3 지위에 올랐습니다. 이마저도 2001년에 이사회 정수를 33개 국가에서 36개로 늘리면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파트2에 있는 국가들은 지역별 국가들끼리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 41차 총회의 파트2 이사국 선거 결과를 한번 보겠습니다. 기존에 있던 콜롬비아, 네덜란드, 핀란드 대신에 베네수엘라와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가 새로운 파트2 이사국이 됐습니다. 콜롬비아 대신 베네수엘라, 네덜란드 대신 오스트리아, 핀란드 대신 아이슬란드, 이렇게 가까운 지역에 있는 국가들끼리 상호 교환 및 지지를 해준 것으로 보입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파트 3은 경쟁이 치열한데, 파트1, 파트2는 지위 유지를 위해서 현 이사국 연임을 선호하고, 상호 지지를 해주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파트1, 2 이사국 숫자 증가가 아니고는, 한국이 이사국 파트 상향을 하기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죠. 하지만, 2016년에 ICAO는 이사국 정수를 기존 36개에서 40개로 늘리기로 했습니다. 아직 모든 회원국들이 이사국 정수 확대에 대한 비준을 하지 않아서 언제쯤 40개 국가로 이사국 정수가 확대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일단 40개로 이사국을 늘리기로 합의를 한 만큼, 한국은 파트 상향을 위해 만만의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러시아의 파트1 이사국 퇴출
이번 ICAO 41차 총회에서 벌어진 ‘대반란’은 바로 러시아가 파트1 이사국에서 퇴출이 됐다는 겁니다. 항공업계에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면서 국제기구에서 러시아의 역할에 대해 많은 함의를 주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러시아는 파트1 이사국 연임 투표에서 170개국 중 80표를 얻었고, 과반을 얻지 못해 파트1에서 퇴출당합니다.
2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ICAO 역사상 파트1에서 퇴출된 첫 번째 국가가 됩니다. 그리고 국제기구에서 러시아가 퇴출된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ICAO 뿐 아니라 다른 국제기구에서도 러시아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내오는 배경입니다.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총회 전부터 미국과 EU(유럽연합)에서 대 놓고 러시아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죠.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입니다. 전쟁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전 세계 하늘길 운영에 큰 지장이 발생합니다. 러시아 영공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고, 아에로플로트와 S7등 러시아의 주요 항공사들은 항공 동맹에서 잠정 탈퇴가 됩니다. 전 세계 하늘길이 마비되는데 일조한 러시아가 파트1 지위에 있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반대 표를 던진 겁니다.
특히 러시아가 주요 항공기 리스사들의 항공기를 자국 소유로 전환해버린 것도 이번 퇴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EU의 각종 제재가 시작되자, 유럽 등에서 리스를 한 항공기의 국적을 러시아로 바꿔 버립니다. 쉽게 말해서 빌려온 물건을 빼앗은 셈이죠. 한 리스사는 100여 대를 뺏기기도 했습니다.
항공기는 ICAO 규정상 이중 국적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국제적인 규범을 위반한 것뿐 아니라 다른 국가 및 기업 소유의 항공기를 뺏어버린 꼴이 되자, 미국과 EU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해 맹비난을 퍼붓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가 소유권을 빼앗을 항공기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수십조 원이 된다고 합니다.
러시아가 나간 파트1 이사국 자리를 어떻게 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가 나간 자리를 파트2에 있는 국가로 대체하면, 파트2에 공석이 생기게 될 겁니다. 한국에게는 파트 상향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러시아의 ICAO 퇴출에 따른 진통은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만의 ICAO 참여 호소…. 예민한 중국
이번 ICAO 41차 총회에서는 대만의 ICAO 참여를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대만은 ICAO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기조에 막혀서 대만이 제한받는 건데요. 사실 대만이 항공업계에서 가지고 있는 역할과 위상을 고려하면, ICAO 참여는 당연해 보입니다.
국제공항협회 통계에 따르면 타이베이국제공항의 화물물동량은 2020년과 2021년 연속 세계 4위입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비행 안전표준과 항공 인프라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글로벌 규범도 준수하고 있죠. 대만은 ICAO 표준에 부합하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41차 총회에 참여하고 싶어 했습니다.
대만은 2013년 ICAO 총회에 중화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적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중국의 반대로 참석을 못 하죠. 그런데 대만의 ICAO 참여 호소에 미국이 강력한 지지를 표합니다. 피터 부티지지 미국 교통부 장관은 “미국은 대만과 같은 중요한 영공을 관리하는 국가가 ICAO 업무에 의미 있게 참여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ICAO의 중국 대표가 즉각 반발했죠. 중국 대표는 “미국의 주장은 하나의 중국을 둘로 나누려는 시도다. 이는 유엔 헌장에 위배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대만은 이번에도 초대받지 못했는데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중국의 일방적인 군사훈련은 국제 항공노선에 영향을 미쳤고, 타이베이와 인근 지역의 항공 안전을 위협했다”고 말했습니다. 국제 항공에 위협을 가하는 건 오히려 중국인데, 대만이 ICAO에 참여를 못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탄소중립에 힘쓰기로 합의…. 회의적인 반응도
ICAO 회원국들은 이번 총회에서 2050년까지 항공기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줄여 탄소중립을 달성하자는 데 합의를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연료 효율이 높은 항공기와 친환경 연료에 투자하고, 항공기 연료 보조금을 폐지하거나, 공항 확장 계획 및 마일리지 제도와 같은 항공권 서비스 중단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 저감 노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중국과 인도 등 항공산업이 크게 확장되고 있는 국가들이 대표적입니다. 2019년 한국에서 열린 IATA 연차 총회에서 한 중국 항공사는 온실가스 배출 등 기후변화에 대한 노력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출하기도 했죠.
이들 국가는 탄소중립 달성 시기가 너무 빠르다면서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위해서는 큰돈이 들어가는데 여력이 부족한 국가들이 반대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또한 ICAO에서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을 국가별로 할당한 것이 아니고, 온실가스 감축 노력도 자율에 맡긴 만큼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ICAO 총회는 UN 총회만큼 대중들의 관심을 받진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인데요. 하지만 ICAO 총회에서는 항공업계에 국한된 문제뿐 아니라 국제정치학적으로 생각해볼 이벤트가 많이 발생합니다. 이번 기회에 ICAO 총회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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