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 경색으로 자금난 확산… 10월에만 9조 원 가까이 늘어
사상 처음으로 가계대출 역전… 기업 빚 증가 속도 세계 2번째
금리인상 겹쳐 한계기업 속출 우려… “정부 차원 기업대출 관리 필요”
시중은행의 기업대출이 10월에만 9조 원 가까이 불어 사상 처음 700조 원을 돌파했다. 최근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자금 시장 경색이 이어지자 은행 대출에 손 벌리는 기업들이 급증한 탓이다.
기업대출과 회사채 등을 포함한 기업부채 증가 속도가 세계 2위 수준으로 빠른 데다 금리가 가파르게 치솟고 있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좀비기업)의 부실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채권 막히자 시중은행 기업대출 700조 돌파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10월 27일 현재 703조7512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635조8878억 원)과 비교해 10개월 새 67조8634억 원 늘어 700조 원을 넘어섰다.
이는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693조8816억 원)을 웃도는 규모다. 올 들어 가계대출이 15조 원 넘게 감소한 반면 기업대출은 매달 평균 6조8000억 원씩 불어 가계대출을 역전했다. 은행과 제2금융권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의 기업대출은 6월 말 현재 1672조 원으로 올 들어서만 130조 원 급증했다.
올해 초부터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고환율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늘려 온 데 이어 최근 채권 시장 경색으로 자금난이 전방위로 확산되자 대기업들까지 은행으로 눈 돌린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로 5대 은행의 기업대출은 10월에만 8조8522억 원 급증했는데 이 중 67%(5조8592억 원)가 대기업 대출이었다.
기업 빚 증가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빠른 수준이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금융사 제외)은 117.9%로 1년 새 6.2%포인트 늘었다. 조사 대상 35개국 가운데 베트남(7.3%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증가 속도가 빨랐다.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102.2%로 1년 전보다 3.0%포인트 줄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 1위를 이어갔다.
○ 기업 빚 증가 속도 세계 2위… 부실 우려도 커져
금리 급등과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회사채 시장 불안이 계속되면서 기업대출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어닝 쇼크’ 수준으로 기업 실적이 악화된 가운데 대출 급증과 금리 인상이 맞물리면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IIF도 보고서에서 “싸게 돈 빌릴 수 있는 시대가 끝나면서 많은 기업이 빚을 갚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앞으로 대출 비용(금리)이 올라 부도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년 연속 이자비용보다 영업이익이 적은 한계기업의 비중은 2021년 14.9%에서 올해 최대 18.6%까지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김동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늘어난 기업대출은 투자용이 아니라 레고랜드 사태 등 자금 시장 경색에 대응한 긴급자금 성격”이라며 “기업들이 대출을 갚지 못하면 연쇄적으로 기업부채발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빚 갚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 금융사들의 부담이 커지고 다시 기업이 돈 빌리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기업대출의 건전성과 상환 능력을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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