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 효자 품목인 반도체가 3개월 연속 역성장하며 위기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반도체 재고는 급증했고, 덩달아 생산도 줄었다. 문제는 올 4분기가 아니라 내년 상반기 전망이 더 암울하다는 데 있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날 ‘10월 수출입 동향’을 통해 지난달 한국 반도체 수출액이 92억3000만 달러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전년 대비 17.4% 쪼그라든 금액으로 3개월째 감소한 수치다.
그나마 시스템반도체 수출이 17.6% 늘어난 43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메모리반도체 수출액은 35.7% 급감한 44억7000만 달러에 그쳤다. 이 같은 메모리반도체 수출 감소는 D램과 낸드플래시 같은 제품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하락세를 맞으며 수요 약세와 재고 누적이 겹쳤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 3분기 반도체 재고는 전분기 대비 17.4% 급증했다. 월별로는 4개월 연속 증가세다. 재고가 늘어난 만큼 생산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올 3분기 생산은 전분기보다 11% 감소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4분기 이후 14년 만에 최대 감소폭을 보였다.
문제는 내년 전망이 더 어둡다는 데 있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WSTS)는 내년 반도체 시장 성장률을 4.6%로 예상했다. 이는 올해 예상 성장률 13.9%의 3분의 1 수준으로 2019년 이래 가장 낮은 성장폭이다. WSTS는 당초 올해 전망치를 16.3%에서 13.9%로 낮추기도 했다.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과 전망을 보면 열악한 업황을 단적으로 볼 수 있다. 메모리반도체 업계 2위인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기 4조1718억원보다 60.5% 급감했다. 영업이익률도 같은 기간 35%에서 15%로 주저 앉았다.
적자 전환 가능성도 제기됐다. 1일 기준 영업이익 4분기 컨센서스(최근 3개월간 증권사에서 발표한 추정치의 평균)는 219억원으로, 한 달전 1조2312억원의 1.8% 수준까지 줄었다. 일부 증권사는 SK하이닉스 적자 폭이 최대 수천억원대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SK하이닉스가 4분기 적자로 전환한다면 분기 기준으로 영업손실 150억원을 기록한 2012년 3분기 이후 10년 만이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일정기간 동안 투자 축소와 감산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10조원대 후반으로 예상되는 올해 투자액 대비 내년 투자 규모를 50% 이상 줄이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량도 줄인다.
업계 3위인 미국 마이크론도 “수요 위축이 전례 없는 수준”이라며 “내년도 설비투자를 30% 감축 예정”이라고 밝혔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 1위인 대만 TSMC도 이례적으로 올해 설비투자 목표를 10%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반도체 부문에서 부진한 실적을 발표했다. DS(디바이스 솔루션)부문 3분기 매출은 23조200억원, 영업익은 5조1200억원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매출은 12.8%, 영업익은 49% 감소했다.
4분기에도 글로벌 IT 수요 부진과 메모리 시황 약세는 이어질 조짐이다. 파운드리와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실적 개선을 유지하며 DX(디바이스경험)부문의 수익성 확보 노력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메모리는 서버용의 경우 꾸준한 수요가 유지될 것으로 보이지만 재고 조정 영향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단 반도체 혹한기에도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시설 투자를 늘리고, 인위적인 감산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현재 재고가 높은 수준이지만 향후 수요에 대비해 감산없이 투자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이재용 회장의 취임 일성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회장은 지난 25일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 추모식 이후 사장단과 오찬을 갖고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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