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차보다 비싼 중고차’ 시대가 저물고 있다. 고공 행진을 이어가던 국내 중고차 가격이 하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가파른 금리 인상과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이 줄어들자 당장 목돈이 들어가는 중고차 구입을 미루고 있어서다. 이에 새 차 수요도 조만간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2일 중고차 플랫폼 기업 케이카는 판매된 지 12년 이내 국산 및 수입차 약 740개 모델을 대상으로 11월 평균 시세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한동안 강세를 보였던 신차급 중고차,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 차량 가격이 모두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케이카는 테슬라 전기차의 경우 모델X 중고차 가격이 10월 대비 4.1% 떨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BMW X5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중고차 가격은 8.5%, 현대차 투싼 하이브리드는 5.0%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 등 일부 차량만 중고차 가격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됐다.
중고차 가격이 새 차보다 높아지는 특이한 현상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때문에 생겨났다. 차량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서 새 차 구매 계약을 맺어도 차량을 인도받으려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2년 안팎을 기다려야 했다. 이에 당장 차량이 필요한 소비자들이 중고차로 몰리면서 가격을 끌어올렸다.
케이카는 이번 중고차 가격 하락 전망에 대해 “신차 출고 지연 사태가 나타난 뒤 처음으로 중고 친환경차 판매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라며 “고물가와 고금리로 소비 심리가 악화되면서 높은 가격 수준을 유지하던 인기 중고차들도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 차 공급이 완전히 정상화된 것은 아니다. 최근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일부 해소되고는 있지만 출고 지연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이달 1일 기준 인기 차종인 현대차 싼타페 하이브리드를 계약했을 경우 24개월,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 18개월, 제네시스 GV80은 최대 30개월을 대기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생산이 여전히 지연되고 있음에도 중고차 가격이 떨어지는 건 차량 구매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딜로이트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올해 8월부터 자동차 구입 의향이 급락하고 있다. 물가 상승 부담, 경기 침체 우려로 전반적인 소비심리가 급락한 최근 추세와 일치한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중고차에 이어 새 차도 판매 감소 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대출을 끼고 차량을 구매하려 했던 소비자 상당수가 원리금 상환 부담에 계약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대출 이자가 증가했고, 주식과 부동산 등 보유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서 고가 수입차 계약자를 중심으로 차량 인도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중고차 가격이 강세를 보였던 미국에서도 최근 들어 가격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 중고차 가격 동향을 나타내는 만하임 지수는 올해 10월 200.5로 하락하며 1년 내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가격 부담, 경기 침체 우려, 금리 인상이 차량 구매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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