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 정국에 이태원 참사 후폭풍이 일고 있다. 안전 예산을 둘러싼 정부·여야 간 공방이 치열해질 조짐이다.
야당은 “내년 안전 관련 예산이 1조원 이상 감액됐다”며 이태원 참사로 점화된 안전 문제를 예산 증액 공세의 전초 기지로 활용하려는 듯 하다. 정부와 여당은 오히려 이듬해 안전 예산을 9000억여원 늘린 채 국회로 넘겼다면서 정부 예산안 방어에 나섰다.
내년도 예산 확정을 위한 기한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7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민생 관련 예산을 최소 5조원 증액할 방침을 정했다.
정부가 앞서 국회로 제출한 예산안 총지출 규모는 639조원이다. 이 방침대로면 내년 예산은 640조원 선을 돌파한다. 올해 본예산(약 607조7000억원) 대비 총지출 증가율도 5.2%에서 6% 수준으로 껑충 뛴다.
야당은 구체적인 증액 분야로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예산(212억원) △지역사랑상품권(7050억원) △어르신 일자리(6.1만개)·경로당 냉난방비 지원 확대(957억원) △기초연금 부부감액 폐지 및 단계별 인상(1.6조원) △고금리로 어려운 중소기업·소상공인·취약차주 지원 예산 확대(1조2797억원) 등을 들었다.
특히 국민 안전 예산과 관련해 “내년도 안전 사업 예산이 크게 감액됐다”고 주장했다. 김병욱 민주당 정책조정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지난 4일 당의 예산 증액 방침을 설명한 자리에서 “(내년) 52개 안전 사업 예산이 올해보다 1조3000억원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여당은 곧장 반박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재난·안전 분야 예산이 올해 21조9000억원에서 정부안 기준 22조3000억원으로 1.8%(약 4000억원) 증가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재난·안전예산이란 ‘재난안전법’ 제10조 2항에 따라 사전협의에 들어가는 사업들을 가리킨다.
기재부는 또한 지방이양·완료사업 등을 제외한 실질 증가율을 계산할 경우 오히려 재난·안전예산이 올해보다 4.2%(9065억원)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앞서 야당은 정부가 119 구급차량 관련 예산을 20억원 깎았다고 했는데, 이 역시 사실 관계가 다르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119 구급대 지원(소방청) 사업은 음압구급차 신규 보급계획과 노후도를 고려한 일반구급차 교체 계획에 따라 교체 수요를 반영해 편성한 것”이라며 “이를 포함한 구조, 구급, 응급의료 분야는 헬기 확충 등 재난 안전 현장 대응 장비를 대폭 확충함에 따라 147억원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즉, 119 구급차로만 시야를 좁혀서 보면 예산이 축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애당초 계획부터 올해(55대)보다 내년(49대) 도입대수를 줄이기로 했던 것이며 △노후 소방헬기 2대 교체 △소방선박 2척 건조 △수소드론 2세트 도입 등으로 전체 구조·구급·응급의료 예산은 올해 2956억원에서 내년 3103억원으로 약 5%(147억원) 불어난다는 것이다.
재래시장 화재를 예방하는 전통시장시설 안전관리 예산도 마찬가지다. 야당에선 정부가 이를 87억 깎았다고 주장했는데, 정부는 코로나19 기간 2배나 늘었던 예산이 목표 달성 등에 따라 자연스레 정상화됐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야당은 올해보다 축소된 예산과 시민 안전 사이의 연결 고리를 지적하면서 증액 요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안전 예산 전체 규모는 늘렸다’는 정부·여당 측 주장과, 세부적으로 보면 정부가 시민 안전에 좋지 않은 예산 감액을 계획했다는 야당 측 주장이 팽팽히 맞설 전망이다. 결국 이태원 참사 여파가 정쟁으로 옮겨붙는 형국이다.
과반 의석을 앞세운 야당의 증액 예고에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와 예산안 통과 기일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당면한 복합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예산안을 법정기한 내에 통과시켜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드린다”며 “복합위기 상황에서 이젠 다시 허리띠를 바짝 조일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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