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1%대로 낮아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에도 이에 대응할 정부의 거시정책적 수단은 거의 모든 면에서 제약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듬해 보릿고개를 잘 지나려면 위기 가능성을 최소화하도록 부동산·가계대출 등 미시 정책을 잘 조율하고, 피해 극소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8일 국내외 기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한국 경제는 내년 1%대 저성장 전망과 마주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는 앞서 2%대 초반을 예상했으나 피치·씨티 등 민간에서는 1%대 후반을 예상 중이다.
문제는 정부의 대응 수단이 마땅찮다는 점이다.
거시 경제적으로 정부 정책은 재정, 통화, 환율 등 3개 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 중 재정 정책의 경우, 코로나19 기간 급증한 국가 채무로 인해 활용도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쉽게 말해 경기 진작을 목표로 시중에 돈을 풀기에는 이전 정부 시절 나라 곳간이 너무 빠르게 빈약해졌다는 의미다.
통화 정책의 경우 미국 등 주요국 금리 인상에 따라 우리도 금리를 높여야 하지만, 가계부채 등의 문제로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다. 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 국민 생활고가 깊어지는 데다가 자칫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 가격 하락과 건설사 등의 연쇄 부도로 인해 자금 시장이 경색될 수 있다.
환율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높은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한다면 외환 보유고가 축소돼 역으로 위기를 초래하는 측면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경쟁력 저하, 환율 조작국 우려 등도 정부의 운신 폭을 좁히고 있다.
이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앞서 “경제 상황이 엄중하나 정책 수단은 제약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밖에 많은 정부 당국자 역시 최근 복합 위기 상황에 쓸 수 있는 대응 카드는 마땅치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하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상황이 대외 불확실성에서 출발했다는 점도 정부 대응을 어렵게 한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정부가 난처한 상황”이라면서 “자본 시장만 해도 정부가 뭘 할 수 있나. 금리를 안 올릴 수도 없고, 올릴 수도 없다. 내수를 살려야 하는데, 재정 지출을 이전 정부처럼 팍팍 늘릴 수 없다. 언론도 정부가 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가 잠자코 있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그래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경제가 어려워진 데에 대외 요인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비단 그 문제가 아닌 부분도 있기에 개선해 나가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며 “상황에 맞는 정책 조합으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선택 없이는 금융위기나 외환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특히 위기 통제를 위한 미시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예컨대 부동산 가격이 내년 더 떨어지면 금융 위기가 올 수 있다. 이럴 때는 저금리 시기에 조였던 부동산 규제를 푸는 등의 미시 정책을 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신 교수는 향후 예상되는 불경기 상황에서 국민이 입을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자나 생활비를 못 내 극단 선택을 하는 일 등이 없도록 그간의 긴급 지원 대책이 밑바닥까지 잘 지급되는지를 챙길 때”라고 설명했다.
거시적으로는 손발이 묶였지만 미시적으론 자산 거품 붕괴 등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악재에 대비해 둬야 한다는 취지다. 정부가 보다 세밀한 시각을 견지하도록 요구한 셈이다.
단, 금리에 관해서는 과도한 속도의 인상은 자제해야 한다고 주의했다. 김 교수는 “미국이 금리를 빠르게 올린다고 무작정 따라가기 보다는 금리 인상을 어느 속도로 할지 우리 경제의 구조적 특성을 잘 따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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