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10월 선가지수는 161.96으로 전달의 161.94보다 또다시 상승했다. 국내 조선 업체들의 수주 잔량은 이미 앞으로 3년간 건조할 수 있는 물량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대부분 산업이 글로벌 경기침체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는데 조선업에 대해서만큼은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정작 조선업체들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지고 있다. 수주가 잘될수록 ‘인력난’이 극심해지고 있어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인력 부족 체감도 조사에서도 조선이 반도체, 미래자동차, 바이오헬스보다 인력난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총은 미래 신(新)주력산업으로 꼽은 △반도체 △미래차 △조선(친환경 선박 등) △바이오헬스 산업 분야 415개사(응답 기업 기준)를 대상으로 조사했다.
조선업종 기업의 절반 이상(52.2%)은 현재 인력이 부족한 상황(‘매우 부족’, ‘부족’)이라고 응답했다. 다른 업종은 반도체 45.0%, 미래차 43.0%, 바이오헬스 29.0% 등이었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한 기업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생산직무’에서 인력 부족이 가장 심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조선(96.6%)과 미래차(95.4%) 분야에서는 생산직무 인력이 ‘매우 부족’과 ‘부족’이라는 응답 비중이 90%를 넘었다.
거제, 울산, 창원 등 지역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는 조선업계 협력사들은 젊은 층의 생산직 기피 현상 등으로 생산 현장의 허리가 끊겼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조선업의 경우 인력이 부족한 이유로 ‘고용 이후 잦은 이직·퇴직’(38.3%)과 ‘경력직 지원자 부족’(33.3%)을 가장 많이 꼽았다.
A 조선업체 관계자는 “협력사에서 인력 부족으로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되면 최종 납기 일정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며 “지금도 일부 협력사들에서 우리가 수주한 물량을 제대로 소화해내기 버거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조선업계 전체 종사자 수는 9만3038명으로 2014년(20만3441명) 대비 절반 이상 급감했다. 협회는 앞으로 5년간 4만3000명의 추가 인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조선업계는 급한 대로 용접 등 기피 작업을 비롯한 현장 직무를 베트남과 태국, 우즈베키스탄 등 외국에서 온 근로자에게 의존하고 있다. 정부도 8월 올해 고용허가제(E-9)로 국내에 들어올 수 있는 외국 인력 신규 입국 쿼터를 기존 5만9000명에서 6만9000명으로 1만 명 늘렸다. 조선업의 경우 전문인력(E-7)인 용접공과 도장공에 대한 쿼터도 폐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4분기(9∼12월)에 순차적으로 한국으로 입국할 예정이던 1150명의 베트남 용접 근로자의 입국이 서류 조작 등의 이유로 무기한 연기되면서 업계에 혼란이 일고 있다. 이번에 들어오기로 한 인력 수는 지난해 외국인 전체 용접 근로자 도입 인원(600명)의 두 배에 가깝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 수주한 액화천연가스(LNG)선의 인도가 4년 뒤로 잡힐 만큼 호황”이라며 “인력난 해소 한 가지만 빼고 실적 ‘턴어라운드’를 할 모든 퍼즐이 맞춰졌지만, 이 마지막 문제를 풀기가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만큼은 아니지만 반도체업계에서도 현장 인력난이 현실화되고 있다. 경기도의 중견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B사는 생산라인에서 일할 작업자를 구하기 위해 몇 개월째 계속 구인 공고를 내고 있다. 학력 제한이 없고 각종 수당을 포함하면 초봉이 4500만 원을 넘지만 지원자가 없다. B사 관계자는 “반도체 생산라인은 365일 24시간 돌아가야 하는데 현장의 젊은 직원들이 철야 근무를 피해 줄줄이 퇴사하고 있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어렵게 신입 직원을 구해도 6개월이면 절반이 그만두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