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기술의 만남〈上〉
극작가 AI 따라 배우들 퍼포먼스
자동차 이동따라 바람 그래픽화 등
기존 예술 정형 벗고 새 영역 개척
《4차 산업혁명 시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들, 인공지능(AI)과 이동 수단들은 예술의 표현 및 전시 형태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작가들의 현장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정책을 통해 이 같은 흐름을 2회에 걸쳐 짚어 본다.》
과학기술을 예술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그 미래에 대한 논의를 담은 전시들이 잇달아 열리고 있다. 인간과 AI의 관계를 다루어 온 노진아 작가는 29일까지 서울 마포구 방울내로에 위치한 복합 예술공간 얼터사이드에서 전시회 ‘비정형 데이터’를 연다.
관객들은 어린아이를 닮은 로봇을 마주하게 된다. AI가 내장된 로봇에게 말투 단어 등을 다양하게 가르칠 수 있다. 애정을 갖고 가르치거나 폭력적인 내용을 담거나 모두 반영된다. 과연 이 로봇은 적절하게 성장할 것인가. 이 과정을 통해 아이가 교육자의 영향을 받듯 성장을 시작한 AI 또한 AI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감정에 영향을 받게 됨을 보여준다.
작가는 거대한 인간의 머리 모양을 한 로봇들이 이야기를 시작한 뒤 이 대화가 점차 폭력적인 소음으로 변해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이야기만을 하게 되면 인간이든 기계든 대화에 폭력적 왜곡이 발생함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AI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예술적 고찰이자 실험이기도 하다.
AI의 예술적 활용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8월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리멘워커(대표 김제민)가 진행한 시극 ‘파포스’에서는 1만2000여 편의 시(詩)를 학습한 AI가 시를 짓고, 인간 배우들이 이를 바탕으로 퍼포먼스를 했다. 이달 초 서울 노원구 서울과학기술대 미술관에서 오픈스페이스블록스(대표 김은영)가 개최했던 ‘아트 매치-매시업 Art match-mashups-예술:기술:향유’전에서는 시각 예술가들의 스타일을 학습한 AI가 이 스타일을 입체화해 보여주기도 했다.
‘아트매치…’ 에 참여했던 이돈순 작가는 “AI가 작가의 스타일을 충분히 연구하게 한 뒤 작가의 진술사항까지 곁들여 작가의 개성이 살아날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시극 제작에서 AI와 인간의 분업화 과정을 진행했던 김제민 대표는 “AI를 도구가 아닌 공동 창작자로 여겼다”고 했다. AI가 조력자인지, 대등한 공동 창작자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분명한 흐름은 AI 및 새 과학 기술들이 표현의 기술적 제한을 완화시키며 작가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 양아치는 12월 서울 일대에서 관객들이 자신의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육안으로 보는 서울의 실제 경관과 진행자가 스마트폰과 라디오 등 각종 미디어 기기를 통해 제공하는 서울 이미지 간의 대비를 경험하게 하는 ‘로이베티’전을 진행한다. 이에 앞서 김동현 작가는 지난달과 이달 초 서울 일대에서 차량을 이용한 이동식 프로젝트 ‘캐러밴 신스(Caravan Synth)’를 진행했다. 장소를 옮겨가며 주변의 햇빛과 물 바람 온도 등 환경적 요소들을 센서로 측정해 이를 음악과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두 작가 모두 대표적인 이동 수단인 자동차를 활용해 ‘이동’이라는 요소를 공연에 포함시켰다. 이는 정해진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던 기존의 예술 공연 및 전시와는 다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과학기술이 예술의 창의성과 표현 능력을 더욱 높일 것으로 보고 두 분야의 융합을 모색하는 작가들을 지원해 왔다. 현대 과학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를 활용한 예술계의 실험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도전도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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