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업계 불황으로 기업들의 ‘투자 축소’ 움직임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당장 한국과 대만의 주요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투자를 대폭 줄이는 반면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차세대 기술을 위한 신규 장비 도입을 서두르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23일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최근 발표한 디스플레이 중장기 수요 예측 보고서에서 내년 디스플레이 면적 수요가 올해보다 6.2%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고 수요 급감이 개선되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디스플레이 수요가 다시 정상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다.
다만 공장 가동률을 낮추려는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노력에도 불구, 세트 업체들의 디스플레이 관련 제품 재고는 아직 줄지 않고 있다. 이에 내년 상반기까지는 패널 시장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며, 기업들은 위기에 대비해 투자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SCC도 글로벌 디스플레이 장비 투자 규모가 올해 17조원에서 내년 9조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
실제 LG디스플레이는 재무 체력을 회복하기 위한 고강도 자구안을 가동하며 액정표시장치(LCD) 출구 전략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김성현 LG디스플레이 최고재무책임자(CFO) 전무는 “시황에 따른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된 TV용 LCD 패널은 국내 7세대(1950×2220㎜) 생산 종료 계획을 기존 일정 대비 앞당기겠다”며 “중국 내 8세대(2200×2500㎜) 패널 생산도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무는 “재무건전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전까지 당분간 필수 경상 투자 외에는 투자 및 운영 비용을 최소화할 계획”이라며 “올해 캐펙스(Capex·시설투자)는 연초 계획 대비 1조원 이상 축소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대만 패널 제조사들도 공격적인 투자를 멈추고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이노룩스(Innolux)는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기존 260억 대만달러에서 230~240억 대만달러 수준으로 10% 가량 줄인다는 입장이다.
AUO와 한스타(HannStar)도 신공장 건설 계획을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AUO는 설비투자 금액을 450억 대만달러에서 360억 대만달러로 낮췄다.
그러나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점유율 확대를 위해 미래 기술과 설비에 집중 투자를 확대하는 등 정반대 행보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는 가상현실(VR) 디스플레이 시장 공략을 위해 40억 달러(약 5조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IT용 OLED 패널 생산설비를 확대해 베이징 경제기술 개발구에 6세대 신형 반도체 디스플레이 라인 생산공장을 건설하는 것도 이 일환이다.
CSOT도 8.6세대 LCD 설비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며 비전옥스는 최근 6세대 라인인 V3에 관련 제품 연구·개발 목적으로 OLED 패널 수직 증착기를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기반 시설 구축과 설비투자, 패널 생산, 판매 등 전 단계에 걸쳐 디스플레이 기업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생산 목표 수율을 달성한 기업에는 격려금을 주고 적자가 발생한 기업에는 보조금을 지급한다. 2016~2020년까지 5년 간 중국 1위 디스플레이 제조사인 BOE와 2위 CSOT는 각각 1조 6000억원, 9200억원의 적자 보조금을 받았다.
국내 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은 아직 중국과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지만 기술적 우위를 지속하려면 중국의 추격을 미리부터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디스플레이 전문 조사업체인 유비리서치 이충훈 대표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아직 수율이 낮고 성능은 뒤처진 상태지만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며 한국을 추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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