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동안 퍼센트 아라비카(이하 아라비카) 코엑스몰점에서 네 번이나 들린 질문입니다. 백팩과 스니커즈는 각각 20만 원, 10만 원대.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에선 상상도 못할 굿즈 가격인데요. 그럼에도 구매 희망자가 ‘비싸다는 후기’만큼 많습니다.
이 카페의 정체를 파헤쳐 보죠.
일찍 온 새에게 허락된 라테 한 잔
2022년 9월 11일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아라비카 국내 1호점이 오픈했습니다. ‘중국, 싱가포르, 프랑스’ 등 전 세계 18개국에서 125개 매장을 운영 중인 일본의 카페 브랜드입니다. 국내에서는 ‘응’ 단어를 닮은 % 로고 때문에 응커피라고 불립니다. 코엑스몰점 론칭 당일 2시간이 넘는 웨이팅으로 화제를 모았죠.
오픈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음에도 대기 줄이 있더군요. 심지어 발 깁스를 한 채 커피 한 잔을 기다리는 이도 목격했습니다.
가장 먼저 백팩과 스니커즈를 보기 위해 굿즈 코너로 향했습니다. 오픈일부터 재고 현황에 대한 질문이 쇄도했다고 하네요.
가장 인기 상품은 텀블러. 그 외에 대부분의 제품도 초반 물량이 완판된 상황입니다. 다행히 구매하고 싶던 8온즈용 텀블러는 남아있네요. 가격은 3만 1천 원으로 용량을 감안하면 블루보틀보다 비싼 편입니다.
‘라테 명가’답게 커피 맛은 훌륭했습니다. 개시 10분 전 매장에서 진행된 창립자 케네스 쇼지의 시음 과정을 보며 기대감이 높아졌죠. 그가 미소를 보이자 비로소 매장 문이 열립니다.
일반 라테와 시그니처 메뉴인 교토라테를 주문했습니다. 355ml 기준 카페라테 가격은 스타벅스보다 1500원 더 비싼 6500원. 소량의 연유가 첨가된 교토라테는 무려 7300원입니다. 점심 한 끼와 맞먹는 가격이지만 원두 향과 깔끔한 단 맛의 조화는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롯데백화점의 윤향내 F&B 베이커리 바이어 팀장은 “로스팅에 강점을 지닌 브랜드답게 가격대에 어울리는 맛을 구현했다”고 평가합니다.
즉석 로스팅한 원두를 판매하는 로스터리 코너도 인기입니다. 손님의 입맛과 사용 기기에 따라 원두를 추천하는 것이 핵심. 로스터와 잠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원두를 갓 볶으면 최적의 맛을 낼 수 있는 레스팅 기간이 길어진다고 합니다. 로스팅 된 채 패키징되는 완제품들과의 차별점입니다. 주문 후 픽업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줄곧 이용률이 높았던 비결이 아닐까요?
스타벅스 단골의 카페 창업기
케네스 쇼지에게 영감을 준 건 스타벅스였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대학 시절을 보내며 자주 찾던 공간이었죠. “1990년대 스타벅스는 새로운 커피 문화와 분위기로 저를 사로잡았어요. 그곳에서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역 회사에 입사한 쇼지는 출장을 통해 여러 국가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고민할 때마다 커피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2011년 홍콩으로 이주한 그는 현지에 차별화된 카페가 없다는 점을 깨닫고 창업에 뛰어듭니다. 하와이의 커피 콩 농장을 매입할 정도로 열정적이었죠. “카페 사업에 진심을 다하려면 원재료 농장을 소유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습니다.(2021년 6월호, 포브스)”
홍콩에서 첫 매장을 선보였지만 본격적으로 브랜드가 알려진 곳은 교토입니다. 2014년에 출점한 히가시야마점이 그 무대. 지금도 일본 여행의 필수 코스로 꼽힙니다. 아담한 규모와 달리 100m 이상 대기 줄이 늘어날 때도 많습니다.
인기 여행지에 입점한 것이 주효했는데요. 히가시야마점이 위치한 골목길은 교토에서도 많은 여행객이 찾는 곳입니다. 야사카의 탑이 보이는 구도 덕분에 커피를 든 손의 포토존이 되죠.
오래된 주택들 사이 깔끔한 화이트 톤 외관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매장 안에서는 아라비카만의 콘텐츠가 돋보입니다. 커스터마이징한 슬레이어 에스프레소 머신이 대표적입니다. 전면에 %가 각인된 디자인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세계 라테 아트 챔피언십의 우승자가 거품 위에 수놓는 라테 아트도 입소문을 탔고요. 코엑스몰점에서 경험한 로스터리 코너도 이곳의 하이라이트죠.
교토 명소가 된 아라비카는 굿즈까지 론칭하며 마니아들을 공략했습니다. 여행 추억과 연결된 브랜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 겁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텀블러 및 홈 브루잉 장비 외에 패션 용품도 다뤘는데요.
%만 강조된 심플한 디자인이 포인트. ‘라이카의 레드닷, 라코스테의 악어’처럼 잘 만든 로고가 있기에 가능한 전략이죠. 또한 기획 및 생산 과정을 현지 제조사들과 진행하며 ‘핸드메이드 재팬’이란 타이틀까지 확보했습니다. 백팩 론칭을 알린 SNS 게시글에 판매 시작일을 묻는 댓글이 쇄도했던 이유입니다.
굿즈를 손님들과의 소통 수단으로도 활용했는데요. 소비자가 스니커즈로 연출한 사진을 재공유하거나 소비자 투표를 진행해 최종 디자인을 결정했죠.
글로벌하되, 응스럽게
아라비카는 해외 사업에서 일관된 톤앤매너와 메뉴 완성도를 유지합니다. 일례로 대부분의 아라비카 매장은 화이트 앤 우드톤입니다. 동일한 브랜드 이미지를 상기시키죠.
단, 상권마다 규모와 콘셉트를 조정해 색다른 매장을 구현합니다. 이를테면 해변가 지역인 홍콩의 리펄스 베이에서는 파도 물결을 형상화한 천장과 수도관을 닮은 주문 코너를 더했습니다. 실내 폭포와 정원이 특색인 싱가포르의 주얼창이 공항에서는 화원을 차용한 소규모 매장을 공개했고요.
커피 맛에도 총력을 가합니다. 매장 오픈 시, 본사에서 파견된 바리스타가 약 2주간 현지 직원을 교육합니다. 슬레이어 에스프레소 머신을 고수하는 이유도 바리스타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추출 온도 및 물의 양을 미세하게 조정 가능한 것이 해당 장비의 특징인데요. 즉, 디테일한 부분까지 설계할 수 있어야 아라비카의 커피를 만들 수 있죠.
로스터의 이수 과정도 엄격히 진행됩니다. 생두를 볶을 때 측정되는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장비의 이상 유무까지 확인합니다.
스타필드 코엑스의 커피왕은 누구?
한국에서도 교토 핫플의 성장세가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합니다. 아라비카가 속한 3세대 커피 시장이 레드오션이기 때문입니다. 인스턴트 커피가 대중화됐던 1세대를 지나, 2세대는 프렌차이즈 카페가 확장하던 시기입니다. 체계적인 가맹 시스템 덕분에 소비자들이 입맛에 맞는 커피 메뉴를 즐기던 때죠.
점차 카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짐에 따라 차별화된 원두와 서비스를 앞세운 3세대 스페셜티 매장이 등장했습니다. 국내 프랜차이즈 중에는 블루보틀과 스타벅스 리저브가 대표적입니다. 프릳츠와 테라로사 같은 국내 브랜드의 활약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아라비카 1호점이 위치한 스타필드 코엑스몰에서도 스타벅스 리저브와 테라로사가 경쟁 중입니다.
선발주자들의 기세가 매서운 만큼 아라비카는 과도한 현지화의 위험을 경계해야 합니다. 고객 니즈와 거리가 먼 콘셉트를 초래할 수도 있으니까요. 소비자들이 아라비카에게 원하는 건 교토 브랜드만의 특색입니다. 수준 높은 카페인은 물론 지난 여행의 감성까지 채워주는 것이 코엑스몰 루키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요?
아라비카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국내 카페 브랜드도 많아지길 기원합니다. 아라비카는 주요 커피 소비국이 된 중국에서도 6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입니다. 2022년 중국 커피 시장 규모 추정치는 약 3817억 위안(약 72조 2000억 원)에 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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