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찾은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정돈된 공장의 외경 사이로 눈에 들어온 무너진 담장, 쌓여있는 토사와 잡목은 9월 6일 태풍 ‘힌남노’로 입었던 피해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제철소 내 복구가 진행 중인 공장 쪽으로 접근하자 하얀 임시 천막 아래 주황색, 파란색 옷을 입고 분주히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근로자들이 여럿 포착됐다.
태풍으로 인해 범람한 인근 하천(냉천)에 가까운 2열연공장은 당시 큰 피해를 봤다. 2주에 걸쳐 공장에 들이찬 토사를 제거하고 보니 축구장 다섯 개 면적에 높이 8m로 쌓을 만한 양이었다고 했다. 이 공장은 포항제철소 연간 생산량 1350만 톤(t) 중 500만 t이 통과하는 핵심 라인으로, 12월 재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공장의 기계 부품들을 분해, 세척, 건조한 뒤 재설치하고, 교체가 불가피한 전기 제품들을 새로 들여놓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전기 설비와 모터 등이 위치한 지하 8m 깊이, 길이 약 450m의 공장 유실로 들어서자 천장, 배관 곳곳에 매달린 기름방울이 눈에 띄었다. 당시 지하실에 물이 가득 들어차면서 기계 설비의 유압기 등에서 기름이 새어 나온 흔적들이다. 천시열 포항제철소 공정품질담당 부소장은 “냄새도 안 났고, 당연히 훨씬 깨끗했던 공간”이라며 “기계와 모터를 수리하고, 전력 계통까지 점검한 다음에야 수해 흔적까지 온전히 지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악의 물난리를 겪었던 한국 산업의 중추 포항제철소는 직원들의 노력과 지역사회의 도움을 통해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침수됐다 10월 7일 재가동을 시작한 1열연공장에서는 시뻘건 슬라브(철강 반제품)가 압연(철을 용도에 맞게 가공하는 것) 롤러 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포스코는 다음 달이면 포항제철소가 생산해왔던 모든 철강 제품을 정상 공급하고, 2월 중순이면 힌남노 피해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복구 계획을 내놨다. 포스코는 현재까지 18개의 압연 공장 중 7개를 정상화했으며, 연말까지 15개를 재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포스코는 “스테인리스스틸(STS) 2냉연공장 재가동을 기점으로 일단 모든 철강 제품을 생산할 체제가 갖춰지게 된다”고 소개했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민관 합동 ‘철강수급 조사단’의 조사 중간 결과에서도 STS 1냉연 공장, 도금공장 등이 재가동되는 내년 1분기(1~3월)면 생산 설비가 태풍 피해 이전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됐다.
포항제철소에서 만난 직원들은 하나 같이 ‘천운’ ‘기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3고로(용광로)에서 만난 김진보 포항제철소 선강담당 부소장은 “고로가 설치된 1973년부터 지금까지 태풍 때문에 일시 가동 중지(휴풍)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만약 정상 가동 중이었다면 고로가 통제 불능에 빠져 망가져 버렸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포스코는 힌남노 상륙에 대비해 3개 고로에 모두 휴풍 조치를 내렸고, 4일 만에 3고로를 정상 가동한 데 이어 2, 4고로도 가동했다. 산업부 장영진 1차관이 14일 “포스코가 상당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사전 예보된 태풍에 더욱 철저히 대비했어야 했다는 점에서 일부 아쉬움이 있다”고 비판했지만, 일각에서는 핵심 설비인 고로를 지켜낸 점과 빠른 재가동만큼은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포스코는 침수 피해 후 78일 동안 이어진 복구 작업에 100만 명 넘는 인력이 투입됐다고 밝혔다. 모터를 말리기 위해 농가로부터 고추 건조기까지 빌렸고, 전기 공급이 안 되는 지역에서 펌프를 작동시키기 위해 전기 승용차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포스코를 퇴직한 직원들까지 발 벗고 나서 복구 작업에 속도를 내는 상황이다. 포스코 명장(名匠) 1호로 170t 압연기용 메인 모터 복구를 맡고 있는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손병락 상무보(64)는 “포스코는 늘 안 되고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나아갔다. 이번에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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