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0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 퇴직연금 시장이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도입으로 크게 들썩이고 있다. 지난 7월 도입된 디폴트옵션은 가입자의 별도 지시가 없을 경우 사전에 지정해놓은 방법으로 퇴직금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가장 큰 변화는 TDF(Target Date Fund)에 자금이 몰리는 것이다. TDF는 가입자가 지정한 시점에 맞춰 생애주기에 따라 위험자산 및 안전자산의 비중을 알아서 조정해주는 자산 배분 펀드를 말한다. 미국에서는 2006년 디폴트옵션 도입 이후 TDF 시장이 연평균 25% 이상 성장했다. 노후 준비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를 중심으로 TDF에 많은 이목이 쏠리자 자산운용사들이 보수 인하 경쟁을 통한 투자자 유치에 나섰다.
국내 TDF 시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선도하는 가운데 삼성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 등도 규모를 키우고 있다. 제로인 펀드닥터 자료에 따르면 10월 말 운용 펀드 순자산 기준 전체 TDF 시장은 10조 5743억 원 규모다. 이 중 미래에셋자산운용 TDF가 4조 7619억 원, 시장점유율 약 45%로 운용 규모가 가장 크다. 미래에셋이 TDF 운용에 두각을 드러내는 데는 연금을 통한 노후 준비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박현주 회장의 인사이트가 크게 작용했다는 평이다.
현재 자산운용사들이 TDF를 운영하는 방식은 자체 운용과 위탁 운용, 2가지다. 자체 운용은 운용사가 직접 글라이드패스(glide path·투자자 연령대에 맞춰 주식과 채권 등 자산 비중을 조절하는 일종의 설계도면)를 만들어 적용하는 방식이며, 위탁 운용은 미국 등 외국 운용사의 자문을 받거나 위탁하는 형태다. 국내 자산운용사 가운데 TDF 도입 초기부터 자체 운용을 고수해온 곳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유일하다.
자체 운용과 위탁 운용의 가장 큰 차이는 ‘수수료’다. 자체 운용의 경우 위탁 운용사에 지급하는 수수료가 없기 때문에 수익률이 높아져 투자자에게 유리하다. 수수료는 최근 TDF 시장에서 가장 큰 이슈다. 최근 자산운용사들이 신규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앞다퉈 운용 보수를 낮추며 TDF 수수료 인하 경쟁이 시작됐다. KB자산운용은 올해 1월과 7월, 두 차례 걸쳐 ‘KB온국민TDF’ 운용 보수를 낮췄다. 삼성자산운용(삼성한국형TDF)은 8월, 한국투자신탁운용(한국투자TDF알아서)과 한화자산운용(한화 LIFEPLUS TDF)은 9월에 각각 운용 보수를 인하했다.
패시브는 ‘KB’, 액티브는 ‘미래에셋’ 가장 저렴
전문가들은 운용 보수를 비교할 때 투자자들이 실제 부담하는 보수와 비용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 운용 보수가 아닌 ‘합성 총보수비용’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합성 총보수비용이란 운용, 판매, 신탁, 사무관리 보수를 더한 총보수에 기타비용과 피투자펀드 보수(해당 TDF가 투자하는 다른 펀드의 보수)까지 합산해 투자자가 실제로 최종 부담하는 수수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TDF는 자산배분형 펀드 특성상 재간접형 구조가 많다”며 “투자자들은 단순히 펀드 총보수만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피투자펀드 보수도 포함한 비용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의 대표 TDF 합성 총보수비용을 비교해본 결과, 모든 빈티지(은퇴 목표 시점)에서 패시브(지수 추종) 형태로 운용하는 KB온국민TDF가 가장 저렴했으며, 액티브(펀드매니저의 운용 전략 적극 반영)로 운용하는 TDF 중에서는 ‘미래에셋전략배분TDF’가 가장 저렴했다. 대표적으로 TDF2035는 KB온국민TDF가 연 0.882%, 미래에셋전략배분TDF가 연 1.05% 수준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위탁 운용 여부와 피투자펀드 보수가 합성 총보수비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자체 운용으로 위탁 운용 수수료가 없고, 투자자 수익률 제고를 위해 펀드를 모자형으로 구성해 일부 재간접형 모(母)펀드를 제외하고는 자(子)펀드인 미래에셋전략배분TDF만 보수가 발생하기 때문에 동일 유형 중 합성 총보수비용이 가장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또 TDF는 장기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보수 차감 후 장기수익률을 비교하는 것이 좋다. 금융투자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펀드는 운용사별 운용 전략과 시장 상황 및 대응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진다”며 “보수 차감 후 수익률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입 전 꼼꼼하게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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