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열차 교체사업 최저가 낙찰제 논란… “기술-안전 우선돼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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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기업이 미래다]국내 철도차량 발주의 문제점과 과제
올해 철도 관련 사고 지속적으로 발생… 수명 다한 무궁화호, 부품 교체 후 가동
열차 낙찰 할때 저가 수주 경쟁 치열, 미검증 부품 사용한 업체가 뽑히기도
“입찰평가제도 강화해 공정성 높여야”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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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철도 관련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선로 위의 열차 탈선부터 고장, 충돌, 화재 등이 대부분이다. 철도 사고의 확률은 일반 도로교통보다 비교적 낮은 편이나 유사시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동차의 경우 고장으로 열차가 멈추게 되면 전 노선이 지연되기 때문에 차량 고장으로 인한 출퇴근길 실질적인 불편도 매우 높은 편이다. 국민 안전과 불편 감소를 위해서 노후 차량의 교체가 적시에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현장에선 최근의 노후차량 교체 등을 위해 신규로 도입하는 전동차의 계약이 납품 지연 등의 문제로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행 경쟁입찰 제도에서의 기술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최저가 낙찰제도를 시행해 적기 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최근의 철도 사고가 증가하는 원인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전동차의 도입 지연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고스란히 이용자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연이은 철도 안전 사고로 불안감 커져


특히 올해 11월엔 철도 관련 사고가 수차례 발생하면서 안전 이슈가 불거지고 있다. 5월 말 개통한 신림선은 고장이 잦은 구간으로 개통 초기부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신림선은 여의도 샛강역과 관악산(서울대)역을 연결하는 총 7.8km 길이의 경전철 노선이다. 신림선은 개통 한 달 만인 6월 21일 보라매역∼서울지방병무청역 구간에서 전동차가 멈춰서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달 17일에도 신림선은 오후 6시 32분께 보라매공원역 분기기(열차를 다른 궤도로 옮기는 설비) 부근 안내 레일에 이상이 발생해 전 구간에서 운행이 중단됐다. 이튿날에도 서울도시철도 신림선 하선(관악산역 방면)이 열차 고장으로 운행을 중단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무궁화호 안전 문제도 끊이질 않는다. 가장 먼저 이달 6일 오후엔 경부일반선 무궁화호가 영등포역 인근에서 탈선해 2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여파로 다음 날 아침까지 1호선 열차가 지연 운행됐다. 21일 오전 8시 43분쯤 1호선 소요산행 열차가 차량 고장으로 동대문역에서 정차하면서 출근길 불편을 겪었다.

무궁화호는 20년 이상 사용해 기대수명이 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차량의 수명은 30년 정도인데, 최근 성능 확인을 통해서 부품을 교체하는 수준에서 계속 운행이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신규 전동차가 계약 지연으로 정상적으로 교체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무궁화호 사고는 차량 문제가 아니라 선로 문제였으나, 사고 후에도 차량 내 안전장치 여부에 따라 큰 사고를 작은 사고로 막을 수 있다는 주장 역시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다. 최근에 증가하는 무궁화호 열차나 전동차의 주행 중 고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최저가 낙찰제 탓에 납기 지연 발생”


업계에선 열차 제작사가 기술 투자보다는 저가 수주 출혈경쟁에 매몰되다 보니 전반적으로 기술 하향평준화가 이뤄지고 있고 국내 부품업계를 비롯한 철도업계는 신규 시장에 뛰어든 업체들이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저가의 부품을 사용해 수주량 늘리기에만 급급한 것 아니냐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기술 투자가 위축되고 있으며, 저가 수주 경쟁 탓에 제품 품질이 낮아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철도차량 입찰을 요청할 때 최저가 낙찰제를 기준으로 두다보니 기술 투자 여력이 사라지고, 가격 낮은 수입품으로 대응하는 업체들이 나타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 등은 최저가 낙찰제로도 불리는 2단계 입찰제를 적용하고 있다. 입찰 단계에서 형식적인 최저수준의 평가기준을 넘어서면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가 사업을 따내는 구조다. 현 최저가 낙찰 방식은 제품 단가를 낮추는 효과는 있지만, 계약자가 계약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계약이행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지만, 가격 경쟁만이 아닌 안전과 직결된 기술 중심으로 계약 대상자의 계약 이행에 대한 종합적 평가가 있어야 한다”며 현 제도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현장에선 품질과 상관없이 저가 제품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평가위원들이 현장 실무와 무관한 교수 등 학자 중심으로 짧은 시간에 엄청난 분량의 입찰서류를 평가하다 보니 새로운 현장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세밀한 평가를 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기술평가를 할 때 제작능력, 이행실적, 기술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국산 부품 업체들은 현행 제도에서 기술 평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저가 수주로 인한 기술 하향평준화에 대한 우려도 끊이질 않는다. 현재도 전동차가 사용연한이 지난 경우가 많아 장기적으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제작사의 기술 부족 등으로 납품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최근 해외업체와 손잡고 고속전철의 수주전에 나선 A업체를 두고선 지난 2년간 납기 지연 문제를 일으켰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설계기술 부족과 공장 생산 능력을 초과하는 과다 수주로 인해 납기 지연이 초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한다. 논란이 된 업체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영향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라 공급이 늦어지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저렴한 부품을 사용할 경우 문제도 꽤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특히 해외 부품 의존도가 높을수록 공급망 우려와 향후 유지보수에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전 문제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도


형식적인 기술평가와 최저가 낙찰제로 인해 시장 상황도 재편되고 있다. 국내 철도 시장에서 1위 업체였던 현대로템은 수주액을 기준으로 한 국내 시장 점유율이 15%로 3위로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부족한 업체들이 수주전에 뛰어들면서 국내 철도차량 개발과 부품 국산화 등을 이끌었던 현대로템의 시장 점유율이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산 고속열차에는 부품 국산화율이 85%를 넘어설 만큼 국산화 비율이 높으나 고속열차가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않아 낮은 가격을 써낸 해외업체가 수주 경쟁에서 유리한 상황”이라며 “최저가 낙찰제는 기술과 가격 등 세밀한 평가기준을 가지고 공급업체를 선정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덧붙여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기에 국내에서도 방위, 건설 산업 등엔 아주 세밀한 평가기준으로 계약의 이행 가능성을 평가하고 이를 가격과 합산하는 방식으로 계약 대상자를 선정하도록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유독 철도 분야에서만 이와 같은 최저가 낙찰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고속전철 기술을 가지고 있고 그동안 철도차량산업을 이끌었던 업체가 약세 국면에 접어들 경우, 국내 철도차량산업의 경쟁력까지도 덩달아 악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국산 철도차량산업의 경쟁력도 하향평준화가 되고 수출 경쟁력까지 떨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었다는 우려다.

기술 검증, 사업능력 평가 등 입찰제도 공정성 높여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4번째로 고속열차를 개발하여 KTX-산천으로 운행하고 있으며, 동력 분산식 고속열차도 개발해 운행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의 경우 시험차량인 ‘HEMU-430X’ 개발부터 안정화 단계 개발 완료까지 10년 가까이 민관 자금 1000억 원이 넘게 들어간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개발된 고속열차의 설계 및 제작기술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정부에서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시속 260km의 고속열차 KTX-이음을 상용화하였고 현재 시속 320km급의 전동차를 계약하여 시운전을 앞두고 있다.

한편 한국철도공사는 내달 중 평택선에 운행할 분산식 고속열차를 도입할 계획이다. 입찰 과정에서 스페인 B업체가 국내 모기업과 손잡고 고속열차 시장 입찰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입찰 예정인 스페인 기업은 동력 분산식 고속열차를 만들어 본 경험이 전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동력 집중식은 앞뒤 동력차량을 통해서 운행되는 기술이고 동력 분산식은 동력을 모든 칸으로 운영되는 기술로 대체로 동력 분산식 개발이 더 어려운 것으로 여겨져 해외 기업의 경쟁력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동력 분산식 열차의 사용량은 전 세계적으로 70%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B업체가 국내 업계에 진입해서 동력 분산식 열차 기술을 확보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기술 평가 기준이 높지 않아 일정 수준만 통과하면 최저가를 써낸 기업이 통과하는 구조인 것부터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12월 예정된 고속철도의 변경된 입찰 참가 자격을 기존과 동일하게 ‘동력 분산식 고속열차 실적업체’로 원상 복구하고, 입찰평가제도를 더욱 세밀히해 입찰자의 기술과 사업 수행능력을 사전에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근본적으로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입찰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협상 적격자 선정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상세한 평가기준 마련과 함께 이 기준의 사전·사후 공개를 통해 평가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의 추가 검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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