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A 씨(42)는 최근 인생에서 가장 소득이 많은 시기다. 학비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일을 시작한 17세 이래로 임금이 계속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60대가 되면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다’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부동산 투자 등으로 노후 대비를 하고 있다.
통계청은 29일 발표한 ‘2020년 국민이전계정’에서 한국인의 노동소득과 소비 규모 추이를 분석한 생애주기 수지(收支) 통계를 내놨다. 소득과 지출의 관점에서 연령별로 흑자 및 적자 여부를 따져본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인은 16세 때 3370만 원으로 최대 적자를 낸 뒤 노동소득이 생기기 시작하는 17세부터 적자 폭을 줄인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소비가 많은 것은 생활비에 더해 교육비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20대에 진입하며 적자 폭을 줄이는 한국인은 27세부터 노동소득이 소비보다 많은 흑자 구간에 접어든 뒤 42세에 3725만 원으로 노동소득의 정점을 찍는다. 1년 뒤 흑자 폭도 1726만 원으로 최고치로 오른다. 이후에는 노동소득은 줄고 병원비 지출 등은 늘면서 61세부터는 적자로 전환한다. 요약하면 연령 증가에 따라 ‘적자→흑자→적자’의 3단계 구조를 순차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생애주기 흑(적)자 진입 연령을 연도별로 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흑자 진입 연령은 대부분의 인구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27∼28세로 일정한 편이었다. 그러나 은퇴 등으로 적자에 재진입하는 연령은 2010년 56세에서 2020년 61세로 5세 미뤄졌다. 평균 수명이 늘고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예전보다 늦게까지 일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통계청의 이날 발표는 이탈리아 태생 경제학자인 프랑코 모딜리아니의 ‘생애주기 가설’과도 상통한다. 해당 이론에 따르면 생애 초기에는 지출이 소득보다 많다가 중년에는 소득이 지출을 넘어서고 노년기가 되면 다시 지출보다 소득이 작아진다. 평생 벌어들이는 소득을 인생에 걸쳐 골고루 나눠 소비한다는 은퇴 설계의 기본 이론으로 그는 198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인생을 통틀어서는 ‘적자 인생’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총 소비는 2020년 기준 1081조8000억 원, 노동소득은 984조3000억 원이었다. 총 소비가 더 많아 97조5000억 원의 생애주기 적자가 발생했다. 이 적자는 정부가 제공하는 복지서비스나 가족 간 이전소득, 자산소득 등으로 충당된다. 노동연령층(15∼64세)에서 순 유출된 250조5000억 원은 유년층(0∼14세)으로 141조8000억 원, 노년층(65세 이상)으로 105조6000억 원씩 이전됐다. 정부는 세금과 사회부담금을 걷어 교육·보건서비스와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을 제공했다. 민간에서는 가족 부양 등으로 적자를 메웠다.
한편 2020년 총 소비는 1년 전보다 1.9% 감소해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이래 처음으로 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유년층 소비는 1년 전보다 3.8%, 노동연령층 소비는 3.1% 줄었지만 노년층 소비는 6.4% 늘었다. 고령인구가 늘면서 노년층의 보건소비와 민간소비는 꾸준히 증가한 결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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