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비난, 선정적 문구… 끝모를 GTX-C 시위

  • 동아경제
  • 입력 2022년 12월 4일 10시 49분


“GTX-C 은마 관통 결사 반대, 설계속도 줄여 우회하라.”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자택 주변이 불청객들의 잇단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광역급행철(GTX) 노선변경을 요구하면서 사업 주체인 국토교통부,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을 상대로 별 소득이 없자 정 회장까지 찾아간 것이다.

이곳은 주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퍼지는 고성과 비난, 선정적인 현수막 문구 등으로 인근의 시민들은 심각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시위대들은 시민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고의적으로 소음과 통행 방해 등 시민들의 불편을 유발하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반 주택가에서 시민들을 볼모로 한 무분별한 시위로 인해 단지 기업인의 이웃이라는 이유로 다수의 시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서울 한남동 주택가에서는 지난 12일부터 2주 넘게 지속된 수백명의 구호 소리와 함성으로, 거주하는 시민들이 고통받았다.

대형버스에서 내린 수백명의 사람들이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라는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도로에서 행진하며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했다.

이들은 곳곳에서 멈춰 마이크를 든 사람의 구령에 따라 ‘은마 관통 결사 반대’를 큰 소리로 외쳤다. 함성이라는 구호에는 다같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일부 구간은 시위대로 가득 차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유발됐다. 조금 넓은 도로에서도 이들 때문에 차량이 조심스럽게 서행해야 했다.

이들은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모집한 시위대로, 매일 관광버스를 타고 와 한남동 주택가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유는 GTX-C 노선의 은마아파트 하부 통과를 반대한다는 명분이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국토부의 공식 견해와 건설 전문가들 및 시공사의 설명도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수정안을 요구하며, 주무부처인 국토부와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이 아니라, 정의선 회장의 자택 일대에서 이기적인 집회를 벌였다.

시위대는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에게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시위 시간대는 이미 직장인들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시간대다. GTX와는 전혀 관련 없는 한남동 시민들만 피해를 받고 있다.

시민들은 매일 접하는 거친 비방글과 시위 소리로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자녀 교육에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이 지역 빌라 관리사무소 한 직원은 “이들이 동네 주민들의 생활을 방해하면서 주민들의 민원이 수십건씩 들어온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을 볼모로 주택가 기업인의 집 앞에서 벌어진 민폐 시위는 이뿐만이 아니다.

2020년 적폐청산국민운동이라는 시민단체가 배드민턴장을 무상으로 지어달라며 서울 한남동 이명희 신세계 회장 자택 앞에서 수차례 집회를 벌였다. 이마트가 매입한 부지에 과거 배드민턴장이 있었으니 이마트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청에서 행정 허가도 나오지 않아 기업이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요구를 들고 기업 회장 집 앞에서 막무가내 시위를 한 것이다.

2020년 5월에는 한 시민단체가 서울 한남동 이재용 삼성전자 당시 부회장의 자택 앞에서 술을 마시며 삼겹살을 구워 먹는 소위 삼겹살 폭식 투쟁을 벌였다. 심지어 기타를 치고 노래도 불렀다. 이웃 주민의 민원으로 공무원이 출동했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아 했다.

2019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집 앞에서 벌어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금속노조 시위, 2018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자택 앞에서 열린 전국금속노동조합원 시위 등도 있었다.

올해 초에도 민주노총 택배노조 150여 명이 산하 CJ대한통운 노조의 파업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 중구 장충동 이재현 CJ 회장 자택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지난 5월에는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중심으로 소액주주들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이준호 NHN 회장 자택 앞에서 주가 하락에 항의하며 ‘주주에게 사죄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등 이웃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김승연 한화 회장 자택 앞에서도 주가 하락을 항의하는 비슷한 시위가 수차례 열렸다.

기관장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시의 새로운 광역자원회수시설 입지 후보지로 마포구 상암동 일대가 선정되자 이를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9월부터 오세훈 서울시장 자택 앞에서 한달여간 시위를 진행했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된 시위대의 소음으로 자양동 주민들이 피해를 입어야 했다.

김혜영 서울시 시의원은 지난달 18일 시의회에서 “마포구도 아닌 서울시청도 아닌 시장이 살고 있는 집으로 와서 주변 주민들을 괴롭히는 시위는 절대 공감 받을 수 없다”며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 건전한 집회·시위 문화가 확산·정착되기를 바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같은 ‘도 넘은 민폐’ 시위가 끊이지 않으면서 거센 질타와 함께 다른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도 존중하는 시위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차제에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시위 문화에 대한 준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한남동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자신들의 권리가 소중하다면, 집에서 평소대로 일상 생활을 영위하고 싶은 이곳 주민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점을 시위대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누구도 타인의 사생활 평온을 방해할 자격이 없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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