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노후는 안녕하십니까]〈2〉선진국은 연금개혁 어떻게 했나
‘리스터연금’에 年소득 4% 넣으면 정부가 납입액의 최고 90% 지원
수급연령 2029년 67세로 늦추고 내년 ‘주식연금’ 도입, 재원 보완
‘리스터연금’에 年소득 4% 넣으면 정부가 납입액의 최고 90% 지원 수급연령 2029년 67세로 늦추고 내년 ‘주식연금’ 도입, 재원 보완
“제가 ‘리스터연금’에 연간 1600유로(약 219만 원)를 넣으면 정부가 500유로 정도를 적립해줘요. 20년 뒤 은퇴하면 공적연금 1800유로 말고도 매달 800유로를 추가로 받을 수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의 광고회사에 다니는 한노 밀덴부르거 씨(44)는 20년째 사적연금 ‘리스터연금’을 붓고 있다. 그는 연봉 8만 유로(약 1억950만 원)를 받지만 노후는 고민이다. 과거 휴직 기간이 길어 다른 고소득자에 비해 공적연금이 많지 않은 데다 이직을 많이 해 퇴직연금도 적기 때문이다.
이런 밀덴부르거 씨에게 정부 보조금과 세제 지원이 결합된 리스터연금은 노후 소득을 보완해줄 든든한 버팀목이다. 독일은 2001년 고령화 저출산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공적연금 제도를 개혁하면서 또 하나의 ‘노후 안전망’인 리스터연금을 도입했다.
○ 공적연금 줄어든 자리 메운 리스터연금
세계 최초로 공적연금 제도를 도입한 독일은 2000년대 초반 심각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연금 불능’ 위기에 맞닥뜨렸다. 1990년대 55% 안팎이던 연금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을 유지하려면 미래세대가 내는 돈을 2배로 높여야만 했다. 독일 정부는 공적연금 역할을 축소하고 사적연금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에 나섰다.
이렇게 도입된 리스터연금은 가입자가 연소득의 4%를 넣으면 정부가 납입액의 30∼90%가량을 지원한다. 소득이 적고 자녀가 많을수록 정부 보조금은 늘어난다.
도입 첫해인 2001년 140만 명이던 리스터연금 가입자는 2007년 1000만 명을 넘겼고 2013년부터 1600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현재 48%로 낮아졌지만 독일 근로자들은 리스터연금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생애 평균 소득의 60%가 넘는 연금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디나 프로모트 독일연금공단 연구원은 “당시 연금개혁이 가능했던 건 ‘이대로 가면 연금제도가 무너진다’는 공감대가 있었고 연금을 받는 사람, 내는 사람, 정부 등 모든 주체가 부담을 짊어지는 구조로 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금 수급자는 덜 받고, 납입자는 더 내고, 국가는 리스터연금 지원을 통해 소득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 “독일 연금개혁은 계속된다”
독일 연금 제도는 이후로도 ‘재정 안정성’과 ‘노후 소득 보장’의 균형점을 찾는 방향으로 보완돼 왔다. 2004년엔 일하는 사람에 비해 수급자가 많아지자 인구구조에 따라 연금액을 자동으로 줄이는 ‘지속가능성 계수’를 도입했다. 그러면서도 2030년까지 공적연금 보험료율을 22% 이하로, 소득대체율은 43%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해 노후 안전망 역할이 무너지지 않도록 했다.
길어진 평균 수명을 반영해 법적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도 65세에서 67세로 늦췄다. 프로모트 연구원은 “점진적 개혁을 통해 연금 건전성 지표는 개선되고 있다”며 “당초 예상과 달리 2026년까지 보험료율 인상 없이 현재 수준의 공적연금을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독일 연금개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내년부터 공적연금 재원을 보완하기 위해 ‘주식연금’을 도입한다. 정부예산 일부를 떼어 일종의 국가 펀드를 만든 뒤 주식 투자 등으로 운용해 공적연금 부족분을 메울 계획이다. 리스터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적립금을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투자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선택 가입인 리스터연금을 의무 가입으로 바꿔 정부가 운용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최근엔 노동시장과 연계해 연금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요하네스 가이어 독일경제연구원 부국장은 “연금 재정을 탄탄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고용을 확대해 연금 납입자를 늘리는 것”이라며 “안정적인 연금 제도를 유지하려면 고령자, 여성, 이민자 등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