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총파업) 15일째,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여당이 제시한 안전운임제 일몰 3년 연장안을 수용하며 파업도 봉합 수순에 들어가는 모습이었으나, 정부가 기존안을 뒤집고 ‘선 업무복귀’ 입장으로 선회했다.
당초 정부여당은 안전운임제 관련 ‘일몰제 3년 연장 및 품목 확대 불가’ 입장을 고수해 왔는데, 민주당이 정부여당의 안을 수용하기로 했음에도 정부는 ‘복귀가 우선’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보인 셈이다. 이에 총파업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野 안전운임제 일몰 3년 연장안 수용…정부는 선회
더불어민주당은 8일 정부여당이 제시한 안전운임제 일몰 3년 연장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다만 3년 연장 외 3개 품목 확대는 정부여당이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주에게 적정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로, 지난 2018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에 따라 2020년부터 ‘수출입 컨테이너 및 시멘트’ 2개 품목에 ‘3년 시한’의 일몰제로 도입됐다. 일몰제 시한은 오는 31일이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운임제 지속과 경제적 피해 최소화를 위해 정부여당의 3년 연장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금까지 정부여당이 주장한 안을 전적으로 수용한 이상 국민의힘은 합의처리에 나서야 한다”며 “그동안 품목 확대를 위한 3+3, 5+1, 3+1 등 민주당의 중재안 모두를 거부한 국민의힘은 자신들의 요구를 반영한 만큼 국토위 교통법안소위와 전체회의 일정 합의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품목 확대의 경우 안전운임제를 적용하는 대상을 기존 시멘트, 컨테이너 화물 등에서 철강, 택배, 위험물 등 5개 품목까지 적용 대상을 넓히는 것을 말한다.
다만 정부가 기존안을 뒤집고 ‘선 업무복귀, 후 대화 방침’이란 새 안을 들고나오며 여야 협상도 미궁 속으로 빠지는 모양새다. 정부의 기존 입장은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이었는데, 민주당이 수용하자마자 새 방침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
김수상 국토교통부 교통물류실장은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관련 정례브리핑에서 ‘일몰제 3년 연장이라는 정부 기조가 달라진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업무 복귀가 먼저 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김 실장은 “조건 없는 업무 복귀가 돼야 제도에 대한 부분도 논의되지 않겠나”라며 “(장기화를 우려하는) 그런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 석유화학·철강 업무개시명령…합동조사반 투입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지난달 29일 시멘트 분야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데 이어 오늘 2차로 철강과 석유화학 분야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명분 없는 집단 운송 거부가 장기화됨에 따라 우리 산업과 경제의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물류는 우리 경제의 혈맥이다. 물류가 멈추면 우리 산업이 멈추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 경제와 민생으로 되돌아온다”고 말했다.
이어 “철강, 석유화학 제품의 출하 차질은 곧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핵심 산업으로 확대돼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며 “화물연대의 자발적 복귀를 더 기다리기에는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이 매우 긴급하고 엄중하다”고 설명했다.
당초 지난 6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정유·철강 분야에 대한 추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으나, 당일 국무회의에는 이와 관련한 안건이 상정되지 않았다. 다만 이날 추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림에 따라 국가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무개시명령 최우선 순위로 보였던 정유 분야는 이번 명령대상에서 빠졌다. 철강재와 석유화학 제품 출하량이 각각 48%, 20% 수준으로 떨어진 반면, 정유 분야의 경우 평시 대비 97% 수준까지 회복되고 품절 주유소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 기준 전국의 품절주유소는 78개로 지난 6일 96개, 7일 81개에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업무개시명령 발동 대상은 운송사 240곳, 차주 약 1만명이다. 철강 분야의 경우 155곳 6000여명, 석유화학 분야는 85곳 4500여명 규모다. 정부는 이미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위한 실무준비를 완료했으며, 이날 오후부터 국토부·지자체·경찰로 구성된 합동조사반을 현장에 투입해 업무개시명령서 송달 등 후속조치를 즉시 시행할 예정이다.
◇업무개시명령 시멘트 출하량 100% 회복…피해액 1181억원
총파업으로 한때 10% 이하로 떨어졌던 시멘트 출하량은 100% 가까이 회복됐다. 정부 업무개시명령 이후 출하량은 사실상 정상화 단계에 들어섰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전날 시멘트 출하량은 17만9500톤으로 평소 대비 99.7%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출하량 감소로 인한 피해액은 5000만원으로 누적 피해액은 1181억원이다.
지난달 29일 정부의 시멘트업종 업무개시명령 발동 이후 비노조원 차주들이 현장에 돌아오면서 시멘트 출하량이 빠르게 늘었다. 전체 BCT(벌크시멘트트레일러) 3000여대 중 1000여대가 화물연대 소속인데, 협회는 화물연대 소속 차주 일부도 업무에 복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출하량은 화물연대 파업 첫날인 지난달 24일부터 29일까지 평소 물량의 5~10%에 그쳤지만 30일 25.4%로 반등한 뒤 빠르게 상승했다.
◇파업 참여율 10%대…출정식 대비 41% 수준으로 감소
이날 오전 10시 기준 국토부 집계 자료에 따르면 총파업 집회 참가인원은 3900명으로 전체 조합원(2만2000여명) 중 17.7% 수준이다. 출정식 9600명(43%) 대비 크게 줄어든 수치다.
전날까지 업무개시명령 이행여부 현장조사에서 추가로 확인된 미복귀자는 없었다. 국토부는 지자체, 경찰과 함께 현장조사반을 구성해 현장조사를 실시 중이다.
참여율이 줄어들며 총파업 동력은 약화되고 있지만, 노정 대화가 중단된 상황에서 정부의 강경 대응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총파업이 역대 최장기간을 넘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화물연대의 역대 최장 파업 기간은 출범 이듬해였던 지난 2003년이다. 당시 화물연대는 5월 1차 파업에서 14일, 8월 2차 파업에서 16일 동안 총파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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