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發 방공무기 대란… 국산 천궁·비호 수출 잭팟 기회

  • 주간동아
  • 입력 2022년 12월 11일 14시 50분


美 나삼스 물량 이전에 뿔난 중동의 무기 수입 다변화, K-방산 호재

한국산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방어 시스템 ‘천궁-2’. [방위사업청 제공]
한국산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방어 시스템 ‘천궁-2’. [방위사업청 제공]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이 하는 모든 싸움엔 그 나름 룰이 존재했다. 이런 싸움의 룰은 문명이 발달하고 성숙해가면서 함께 발전했다. 특히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20세기 들어선 국가 간 전쟁에서 여러 불문율이 만들어졌다. 대표적 불문율이 “민간인은 해치지 말자”다. 전쟁에서 싸움은 전투원 사이에 국한돼야 하고, 적의와 무기가 없는 민간인을 공격해선 안 된다는 게 동서고금을 막론한 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에서 전쟁범죄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으면서 전시(戰時) 비(非)전투원 보호는 중요한 가치가 됐다.

미사일로 민간인 공격하는 러시아 전쟁범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 발사한 미사일 잔해들. [뉴시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 발사한 미사일 잔해들. [뉴시스]
그런데 세계 2위 군사대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러시아는 이런 룰을 노골적으로 어기고 있다. 2월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한 러시아는 개전 초 이르핀, 부차 등 도시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전쟁범죄를 저질러 많은 비난을 받았다.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여러 도시에서 러시아 점령 중 자행된 학살과 고문 흔적이 연이어 발견됐다. 최근 러시아는 미사일·드론 공습 같은 국가 차원의 대규모 전쟁범죄도 저지르고 있다. 러시아군이 쏜 미사일과 드론의 약 97%가 우크라이나 군사 시설이 아닌, 민가와 국가 인프라를 겨냥한 것으로 알려졌다. 21세기 러시아군이 13세기 몽골군의 유럽 원정 때나 통용된 ‘공포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엄청난 화력을 민간인에게 쏟아부어 항전 의지를 꺾으려는 시도가 2022년에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물론 지난 9개월간 러시아의 이런 전략은 역효과를 냈다. 우크라이나인은 러시아에 공포가 아닌 분노로 답했다. 강한 항전 의지로 국토 곳곳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있다. 이쯤 되면 공포전략을 포기할 법도 한데, 러시아는 이처럼 비열하고 이해 못 할 싸움을 고수 중이다.

최근 러시아는 지대지·함대지·공대지 등 모든 유형의 공격용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퍼붓고 있다. 지난 몇 달간 계속된 대규모 공격으로 러시아군 미사일 재고는 바닥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미국과 체결한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에 따른 관리 대상인 핵공격용 순항미사일 Kh-55까지 핵탄두를 빼내 사용하는 실정이다. 러시아는 순항미사일과 드론을 섞어 여러 방향에서 동시다발로 발사해 우크라이나군 방공망을 뚫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동시에 쏠 수 있는 지대공 미사일이 100발이라면, 200발 이상의 미사일과 드론을 쏟아붓는 식이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11월부터 극심한 방공무기 부족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명중률 높은 나삼스, 문제는 물량 부족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첨단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나삼스 (NASAMS). [레이시온 제공]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첨단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나삼스 (NASAMS). [레이시온 제공]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 붕괴 때 인수한 구형 방공무기를 여럿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운용 연한이 한참 지나 작동하지 않거나 순항미사일, 드론 같은 소형 표적을 제대로 요격할 수 없는 무기다. 우크라이나는 개전 초기부터 미국과 유럽 국가에 방공무기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으로부터 공급받은 다양한 방공무기로 러시아군의 공습을 막고 있다. 이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미국의 첨단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나삼스(NASAMS)다. 나삼스는 미국 방산업체 레이시온이 노르웨이 콩스버그와 공동개발한 중거리 방공무기다. 당초 노르웨이군 요구에 따라 개발됐기에 ‘노르웨이 선진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Norwegian Advanced Surface-to-Air Missile Systems)’의 머리글자를 따 나삼스로 명명됐다. 나삼스를 백악관 방공 임무에 투입한 미국은 약자를 바꿔 ‘국가 선진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National Advanced Surface-to-Air Missile Systems)’이라 부르고 있다. 미사일은 물론 발사기와 레이더 등 거의 모든 구성 요소를 미국 업체가 맡아 개발 및 제작을 진행 중이다.

나삼스는 1990년대에 첫 개발돼 현재 3세대 모델이 생산되고 있다. 개발비 절감을 위해 기성품을 최대한 활용해 만들어졌다. 레이더는 대포병레이더 AN/TPQ-36 또는 AN/MPQ-64를 사용하고, 미사일은 전투기용 공대공 미사일 AIM-120 암람(AMRAAM)을 거의 그대로 쓴다. 암람은 미사일 내부에 고성능 레이더가 장착돼 스스로 표적을 찾을 수 있다. 그 덕에 나삼스의 대포병레이더로 표적을 찾아 쏘면 미사일이 알아서 날아가 명중한다. 각 세대 모델마다 사용하는 미사일과 레이더가 다르지만 나삼스 초기형 사거리는 최소 30㎞, 최신형은 120㎞에 달한다. 나삼스는 패트리엇 시스템에 준하는 강력한 방공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우크라이나군이 11월 실전 배치한 나삼스는 100%에 가까운 명중률을 보이며 대활약하고 있다. 암람은 빠른 전투기를 잡고자 개발됐기에 둔중하고 느린 순항미사일이나 드론을 요격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동시에 표적 여러 개를 공격할 수 있고 장전용 크레인·레일 세트 덕에 재발사 속도가 빠른 것도 강점이다. 이런 효용성에 만족한 우크라이나군은 나삼스를 적극 사용하고 있다. 초도 물량을 지원받고 한 달도 되지 않아 미사일 재고를 대부분 소진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11월 중순 미국에 추가 물량 지원을 요청했다. 미국 측은 이 물량을 확보하고자 11월 말 업체 측과 12억 달러(약 1조5800억 원) 규모의 추가 조달 계약을 체결했다. 문제는 아무리 간단한 방공 시스템도 주문 즉시 뚝딱 만들어지진 않는다는 점. 이번 계약 물량이 미 육군에 모두 인도되는 시점은 2025년 11월이다. 최근 제작사 레이시온의 그레그 헤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아무리 생산을 서둘러도 최소 24개월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미국은 ‘플랜 B’를 실행하고 나섰다. 2025년 말까지 미 육군에 납품될 물량을 갖고 제3국과 딜을 하는 것이다. 대상은 이미 나삼스를 보유했거나 계약 체결 후 인수를 앞둔 중동 국가다.

미국에 실망한 중동의 방산 탈미(脫美) 열풍
미국이 협상을 진행 중인 중동 국가는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이다. 오만은 2014년 나삼스를 주문한 첫 중동 국가였다. 카타르와 쿠웨이트는 2019년 주문해 나삼스 인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미국이 추진하는 딜은 오만이 보유한 나삼스 재고 중 일부와 카타르 및 쿠웨이트에 납품할 물량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것이다. 그 대신 이들 중동 국가엔 미 육군이 최근 발주한 신규 계약 물량으로 추후 보상하는 방식이다.

미국이 자국 무기를 구입한 국가에 양해를 구해 납품 순위를 조정하는 것은 흔하지만 이번 상황은 얘기가 좀 다르다. 나삼스에 사용되는 미사일은 미국이 재고를 다량 보유한 암람 공대공 미사일이다. 레이더 또한 미 육군이 보유한 AN/MPQ-64 대포병레이더다. 기본적으로 나삼스는 LINK-16 데이터 시스템에 연동해 사용할 수 있기에 미군이 보유한 레이더와 미사일 재고만 넘겨주면 우크라이나군이 방공용으로 쓸 수 있다. 이미 11개 나라가 나삼스를 운용하고 있고 그중에는 호주처럼 당장 급한 안보 위협이 없는 우방국도 있다. 다시 말해 굳이 중동 국가들의 나삼스 물량을 가져올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은 중동에서 군사력을 대대적으로 빼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중동은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졌다. 미국은 탈냉전 이후 중동에 항모 전단 1개, 강습상륙함 전단 1개를 상시 배치 수준으로 운용했고 사우디아라비아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패트리엇 포대도 배치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국은 중동에 있던 주요 전력을 대부분 철수했다. 가령 미국은 사우디 수도 리야드가 후티 반군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는 와중에 리야드 인근에 배치된 사드와 패트리엇 포대를 일방적으로 철수시켰다. 후티 반군에 맞서다 패트리엇 미사일 재고가 바닥난 사우디가 긴급 물량을 요청해도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화디펜스의 ‘비호-2’ 방공 시스템 모형. [한화디펜스 제공]
한화디펜스의 ‘비호-2’ 방공 시스템 모형. [한화디펜스 제공]
천궁, 비호 등 한국산 방공무기 각광
중동 동맹국들이 이란과 친이란 민병 세력의 미사일·드론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미국은 자국 방공 전력을 빼내고 있다. 심지어 이젠 중동 각국이 보유한 방공 자산을 내놓으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중동 동맹국들로서는 미국의 이런 이해 불가한 행보에 큰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사우디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감산 조치로 미국과 충돌하고 있다. 또한 미국산 무기 의존도를 낮추겠다며 앞다퉈 국영무기회사를 설립하고 있다.

미국의 묘한 행보는 엉뚱하게도 한국 방위산업에 큰 호재가 되고 있다. 이란발(發) 안보 불안이 심화하면서 중동 국가들은 당장 방공망 강화가 시급하다.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주요국은 미국으로부터 패트리엇 미사일, 나삼스 등 방공무기 조기 공급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은 상황이다. 중동 각국이 급히 찾는 물건은 기존 지휘통제통신시스템과 연동되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표준 방공무기다. 미국 무기를 대체할 수 있는 유럽 방공 시스템도 조기 공급이 불가능한 것은 마찬가지다. 사실상 한국 외에는 중동에 적합한 무기를 공급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뜻이다. 아랍에미리트(UAE)가 한국산 천궁-2를 구매하고, 사우디가 천궁 시리즈와 비호-2 구매를 추진하는 배경이다. 미국으로부터 나삼스 양보를 요구받은 카타르와 오만도 최근 한국, 이스라엘 방공무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중동 국가들은 이란의 미사일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연합 방공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현재 중동 정세를 이해하고 각국이 원하는 적합한 솔루션을 마련해 적극 대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산 방공 시스템이 중동에서 엄청난 수출 잭팟을 터뜨리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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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368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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