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3세 최윤범, 그룹 내 유일 ‘회장’으로 우뚝… 독자노선 구축 가속

  • 동아경제
  • 입력 2022년 12월 13일 22시 14분


최윤범 회장 승진 이사회 의결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이사회서 ‘찬성’
내년 주총 기점 이사회 과반 임기만료
이달 말까지 ‘소리 없는’ 지분경쟁 격화 전망
최윤범 회장 대표 취임 후 고려아연 실적↑
“사람·현장·소통 중심 경영→실적·성과 가시화”

최윤범 고려아연 대표이사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한다. 명예회장 3명을 제외하면 영풍그룹 내 유일한 회장으로 올라선다. 장형진 영풍그룹 총수의 공식 직함은 고문이다. 최윤범 회장 체제 출범에 따라 그룹 내에서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하고 있는 고려아연의 행보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영풍그룹은 현재 총수인 장형진 고문 일가(장 씨 일가)와 최윤범 신임 회장 일가(최 씨 일가)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고려아연 경영권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주총)에서 결판날 전망이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창근 의장(명예회장)과 최윤범 회장을 비롯해 총 11명으로 구성됐다. 현 이사회는 대체적으로 최윤범 회장과 최 씨 일가에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 의장을 포함해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3명 등 총 6명이 내년 3월 주총을 기점으로 임기가 만료된다. 이사회 구성원 과반 이상이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이사 선임은 주총 안건으로 상정돼 표결을 거쳐 이뤄진다. 회계연도 결산에 따라 주주명부폐쇄일(기준일, 12월 31일)을 기준으로 주식을 보유해야 표결에 참여할 수 있다. 현재 장 씨 일가와 최 씨 일가가 고려아연 지분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 승진 관련 이사회 개최… 영풍그룹 총수 장형진 고문 ‘찬성’
고려아연은 13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최윤범 고려아연 대표이사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 지난 1974년 창립한 고려아연은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창업자 3세인 40대 젊은 리더가 회장으로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날 이사회에는 고려아연 기타비상무이사인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도 참석했다. 장 고문은 최윤범 부회장 회장 승진 안건에 찬성 의견을 냈다. 지난달 고려아연이 한화, LG화학 등과 자사주를 맞교환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올린 이사회에서도 장 고문은 찬성표를 던졌다. 고려아연 자사주가 최 씨 일가에게 우호적인 기업에 넘어가면서 사실상 최 씨 일가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이 늘어난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업계에서는 해당 자사주 맞교환을 통해 최 씨 일가 고려아연 지분율을 27.78%까지 끌어올렸고 장 씨 일가(31.36%)와 격차를 3.58%까지 좁힌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장 씨 일가 측도 대응에 나섰다. 실제로 장 씨 측이 고려아연 지분 추가 매입을 공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장 씨 일가가 보유한 회사 ‘에이치씨’와 ‘씨케이’ 등을 활용해 조용하게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장 씨 일가 측의 이러한 행보를 고려아연 지분 매입을 위한 유동성 확보로 보고 있다. 고려아연 지분 확보 일환으로 최 씨 일가 지분이 많은 ‘영풍정밀(고려아연 지분 1.49% 보유)’ 지분을 장 씨 일가가 매입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영풍정밀을 손에 넣으면 고려아연 주식을 직접 매입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지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주 11월 28일부터 12월 13일까지 기타법인이 고려아연 주식 4만7636주를 매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주식(1986만주)의 0.24% 규모다. 업계에서는 대부분이 장 씨 일가 측(또는 우호 세력)이 매입한 주식으로 여기고 있다. 아직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꽤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다.
○ 지분경쟁 속 최윤범 대표 승진… 영풍그룹 내 유일 현직 회장
최윤범 부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영풍그룹 내 유일한 회장으로 올라선 것이다. 최 신임 회장은 고려아연(1974년 창립)보다 1살 어린 1975년생이다. 최창걸 명예회장과 유중근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최창걸 명예회장은 고(故) 최기호 창업주의 장남이다. 미국 애머스트대에서 수학과 영문학을 복수 전공했고 컬럼비아대 로스쿨(JD)을 졸업했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미국 최상위 로펌으로 알려진 ‘크라벳, 스웨인&무어(Cravath, Swaine & Moore LLP)’에서 기업 인수·합병(M&A) 전문변호사로 활동했다. 고려아연에는 2007년 입사했다. 온산제련소 경영지원본부장을 맡은 뒤 2010년에는 페루 현지법인 사장, 2012년 본사 전략기획 부사장, 2014년 호주 아연제련소 SMC 사장 등을 거쳤다. 이후 2019년 고려아연 대표이사 사장직에 올랐고 작년 부회장 승진에 이어 이번에 회장으로 취임했다.

M&A 전문변호사와 다수 해외 사업소 근무를 통해 글로벌 감각과 현장 중심 경영능력을 익혀왔다는 평가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감각이 뛰어나 국내외 다양한 기업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위기를 기회로 이끈 현장 중심 리더… 팬데믹 기간 3년 연속 실적 개선
경영성과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2014년 호주 SMC 사장 시절에는 기술개발과 공정 개선에 주력해 만성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켰고 2018년에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약 937억 원) 실적을 이끌었다. 최 회장은 자진해서 호주로 건너가 만성 적자였던 SMC를 4년 만에 정상화시키고 역대 최대 실적으로 경영능력을 입증했다. 여기에 SMC에서 물류사업을 만들어 현지 운송업에 진출했고 사업 규모를 확대시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시멘트와 정광을 동시에 운송할 수 있는 트럭 설계를 직접 고안했다고 한다.

고려아연 대표이사에 오른 이후에는 더욱 승승장구했다는 평가다. 원자재 시장 가격 변동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위기 속에서 3년 연속 실적을 개선했다. 이 기간 고려아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했다. 2018년과 비교하면 2021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5%, 43%씩 성장했다. 고려아연 대표이사 취임 후 최 회장은 물류 효율화와 원가절감을 위한 투자, 안전보건시스템 보완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한다. 외부 위기 상황을 기회로 삼아 내실을 다지면서 외적 성장까지 이뤘다는 평가다.
○ 3대 성장 동력 ‘트로이카 드라이브’ 제시… 다수 업체와 사업제휴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미래 비전도 제시했다. 최 회장은 신재생 에너지와 그린수소, 2차 전지(배터리) 소재, 리사이클링을 통한 자원순환 사업 등 3대 성장 동력을 주축으로 하는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발표했다. 올해 신년사를 통해 공개된 트로이카 드라이브는 1년 동안 부문별로 속도감 있게 추진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와 그린수소 사업의 경우 호주를 거점으로 그린수소와 그린암모니아 생산 및 공급을 위한 인프라 구축, 친환경 에너지 개발 사업 등이 확대되고 있다. 배터리 소재사업은 필수소재인 황산니켈과 전구체, 동박 사업 진출을 위해 자회사와 합작회사 설립을 단행했다. 자원순환 사업은 추진 기반 마련을 위해 세계 최대 전자폐기물 시장인 미국과 유럽에서 리사이클 거점을 확보하고 전자폐기물 리사이클 기업인 이그니오를 100% 자회사로 인수했다. 여기에 이그니오가 수거할 전자폐기물을 활용하는 100% 리사이클 동박 생산을 위한 ‘자원순환 밸류체인’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사업 추진과 함께 글로벌 트렌드인 친환경 비즈니스 구현에도 공 들이고 있다. 사장직을 역임한 호주 SMC는 지난 2020년 전 세계 대형 제련소 중 최초로 RE100에 가입하면서 오는 2040년까지 제련소 필요전력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고 선언했다. 고려아연은 작년 9월 국내 금속업계 최초로 RE100에 가입했다. 최 회장이 2014년 호주 SMC 사장으로 부임한 후 본격적으로 추진한 친환경 경영 패러다임이 글로벌 트렌드와 맞물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성은 자연스럽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 고려아연은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상공회의소가 공동 주관한 제29회 기업혁신대상에서 최우수 기업에 선정돼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12월 12일에는 글로벌 금융정보 제공기관인 S&P글로벌이 진행하는 다우존스 지속가능성지수(DJSI) 평가에서 금속광업업계 최초로 DJSI코리아 지수에 신규 편입된 성과를 거뒀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추진하는 여정에 많은 업체들이 공감하면서 활발하게 사업제휴를 추진하는 요인으로 트로이카 드라이브의 사업적 가치를 기업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최 회장에 대해서는 사람과 현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영철학과 현업에서 통하는 전략적인 마인드, 신뢰받는 소통 리더십, 현장에서 익힌 글로벌 사업 감각과 세련된 매너 등이 다수 이해 관계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평가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친환경 경영 패러다임으로 전환은 모든 기업의 의무이자 기회”라며 “지난 50년간 고려아연이 쌓아온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과 전 세계에 있는 ‘트로이카 드라이버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미래에 기여하는 고려아연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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