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 업종중 15개 업종서 감소
투자 늘렸는데 경기침체 덮친 탓
기업들 비상경영 ‘허리띠 졸라매기’
“출장 줄이고 프린트 용지도 아껴라”
주요 기업들 중에는 포스코홀딩스의 잉여현금흐름이 지난해 3분기 1조7990억 원에서 올해 3분기 ―1조4667억 원으로 적자 전환됐다. LG화학도 같은 기간 1조8014억 원에서 ―1조1208억 원으로 현금흐름이 3조 원 가까이 악화됐다. 이외 LG에너지솔루션(2조6309억 원 감소·적자 확대), 삼성중공업(2조1946억 원 감소·적자 전환), 대우조선해양(1조2455억 원 감소·적자 전환) 등도 잉여현금흐름이 크게 악화된 기업이었다.
업종별로는 총 21개 업종 중 15개 업종(71.4%)의 잉여현금흐름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공기업이 지난해 3분기 ―3조5770억 원에서 올해 3분기 ―30조2319억 원으로 적자폭이 8.5배로 확대됐다. IT전기전자(16조8539억 원 감소), 석유화학(8조991억 원 감소), 건설·건자재(5조3998억 원 감소)가 그 뒤를 이었다.
기업들의 잉여현금흐름이 악화되는 데에는 주요 산업 부문에서 영업현금흐름이 설비 투자 지출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등 주요 신산업 분야의 경우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가전 및 정보기술(IT) 제품들의 단기 수요 폭증으로 설비 투자를 대폭 늘렸다. 하지만 올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와 하반기(7∼12월)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현금 유동성이 경색됐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추세가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환경 악화는 물론 각 국가들의 경쟁적 금리 인상에 따라 자금 시장도 급격하게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강민석 교보증권 연구원은 이달 7일 낸 보고서에서 “자금 조달 비용이 급격하게 높아져 회사채 발행을 통한 신규 자금 조달도 녹록지 않다”며 “55% 이상의 국내 기업들은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인 상황이며, 향후 기업들의 이익 개선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주요 기업들은 이미 보릿고개를 넘기 위한 비상 경영에 들어갔다. 내년 설비 투자를 대폭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인력 감축을 위한 구조조정에도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잇단 투자 감축 발표에도 불구하고 투자 규모 축소나 감산 등의 계획을 밝힌 적이 없다. 다만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라인은 유동적으로 운용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내년 투자 규모를 올해 대비 50% 줄이겠다고 했다. 1∼3분기 누적 적자 1조 원을 넘긴 LG디스플레이는 내년 시설 투자를 1조 원가량 줄일 예정이다. 지난달부터 타 계열사로 인력 재배치 작업에도 들어갔다.
업무 현장의 ‘허리띠 졸라매기’도 현실화됐다. 삼성전자는 최근 임원들에게 “새해에는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한다”며 경상비용 감축을 주문했다. 출장자 비율을 올해 대비 절반으로 줄이고 컨설팅비, 시장조사 비용 등도 대폭 축소한다는 방침이다. 프린트 용지 등 사무용품을 50%로 절감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이에 따라 실제 내년 1월 개최되는 ‘CES 2023’ 출장자 규모도 긴급하게 축소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 등 LG그룹 주요 계열사에서도 출장 규모를 축소하거나 영업 접대비 지출을 줄이는 등 긴축 경영에 들어갔다. 전자업계의 가장 큰 프로모션 기간인 4분기(10∼12월)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도 내년엔 마케팅 비용 효율화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한 전자업계 대기업 임원 A 씨는 “내년 총무 비용을 80% 줄이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우스개처럼 올 연말에 사무실 휴지, A4용지를 미리미리 충분히 사두라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의 여유자금인 잉여현금흐름이 감소하면 중장기적인 리스크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며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현금흐름을 최대한 지켜놔야 경기가 회복됐을 때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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