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급격하게 오른 금리가 내년에도 가계와 기업들을 옥죌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 최종금리 수준을 5%대로 상향 조정하면서 긴축의 고삐를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도 3%대 기준금리가 장기간 이어지면 취약계층과 한계기업의 이자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상 여부와 속도를 놓고 한국은행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연준을 따라 최종금리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1.50%포인트까지 벌어진다. 하지만 가파르게 오른 금리 탓에 기업들은 당장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1900조 원에 육박한 가계부채도 한은의 발목을 잡고 있다.
● 연준 따라가면 민간 이자부담 33조 급증
15일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가 나오자 한은은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통해 “예상에 부합해 시장 변동성은 제한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회의를 주재한 이승헌 부총재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최종 금리수준과 유지기간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기준금리가 연준 점도표에서 공개된 5.1%에 이른 뒤 상당기간 고금리 시대가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연준의 최종금리 수준이 오르면서 한국의 기준금리도 상방 압력을 받고 있다. 한은은 지난달 3.5% 수준에서 금리인상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 금리 상단이 5.25%에 달해 한미 금리 차가 역대 최대였던 1.5%포인트(2000년 5~10월)보다도 커지면 외환시장 불안으로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00원 선을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연준을 따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계속될 경우 내년 말 가계와 기업 등 민간 이자부담액이 올해 9월 대비 총 33조6000억 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대출 연체율이 두 배 이상으로 높아지고 한계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부실 위험도 역시 커질 것으로 우려됐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미 기준금리가 1.00~1.25%포인트 차이가 나면 자본 유출의 우려가 있으므로 내년 한은의 추종적인 금리인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 “최종금리 수준, 환율 움직임이 변수”
다만 한은이 3.5% 이상으로 금리를 끌어올리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여전히 단기자금시장의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부동산 시장과 수출 둔화 등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3분기(7~9월) 들어 경기 침체 신호가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의 현금창출 능력은 이미 급속히 쪼그라들고 있다. 앞서 12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총 21조449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8조4754억 원)보다 24.7% 줄었다.
특히 채권 시장 경색의 여파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고금리를 무릅쓰고 은행 창구로 몰리면서 기업 대출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기업대출은 전월 대비 10조5000억 원 늘며 역대 최대 폭으로 늘었다. 회사채도 지난달까지 3개월 연속 발행액보다 상환액이 많은 ‘순상환’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일단은 한은이 내년 1월 13일로 예정된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5%로 0.25%포인트 올린 뒤 금융시장의 반응에 따라 향후 경로를 결정할 것이란 관측이 합리적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환율이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며 “한미 금리 차가 더 벌어지더라도 환율만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면 연준을 따라 금리를 올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