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앞두고 신한금융지주 차기 회장에 진옥동(61) 신한은행장이 내정된 것을 시작으로 금융지주 최고경영자 인사가 하나 둘 발표되고 있다. 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 이석준(63) 전 국무조정실장이 추천되면서 임기가 만료되는 금융지주 회장이 줄줄이 교체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손태승(63)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금융감독원(금감원)과 법정 다툼에서 승리해 연임 가능성이 커졌지만 최근 금융지주사 회장 교체 분위기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졸 신화 쓴 진옥동 행장
금융지주 최고경영자 인사의 포문을 연 곳은 신한금융지주다. 신한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12월 8일 만장일치로 진옥동 신한은행장을 차기 대표이사 회장 후보로 추천한다고 밝혔다. 진 행장은 내년 3월 신한금융지주 정기 주주총회 및 이사회 승인을 거쳐 회장으로 취임한다. 임기는 2026년 3월까지 3년이다. 진 은행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내부 통제, 소비자 보호 등이 가장 중점을 둬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경영 비전을 밝혔다.
전북 임실 출신인 진 은행장은 덕수상고 3학년(1980년) 때 기업은행 입행이 결정돼 은행원 생활을 시작했다. 6년 뒤 신한은행으로 일터를 옮긴 그는 이후 한국방송통신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중앙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상고 출신 은행원에서 4대 금융지주 수장까지 오른 진 은행장의 삶을 두고 ‘고졸 신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진 은행장이 신한금융 회장에 낙점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룹 내 ‘일본통’으로 입지를 다진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신한금융 회장직은 일본 오사카지점장 출신이 많이 맡았다. 신한금융의 중추인 신한은행이 재일교포 자본을 토대로 설립돼 재일교포 그룹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신한금융이 금융지주 가운데 상대적으로 외풍에서 자유롭다고 평가받는 배경에도 재일교포 그룹의 지분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진 행장 역시 오사카지점장 출신으로, 2009년 신한은행 일본법인 SBJ은행의 출범을 이끌었다. 진 은행장은 이후 SBJ은행 부사장, SBJ은행 법인장을 맡았다. 별개로 올해 3분기 9094억 원 당기순이익을 올리며 업계 선두였던 KB국민은행을 꺾은 점도 차기 회장직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3연임을 하리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조 회장이 전격 용퇴를 발표하면서 진 은행장 체제로 가닥이 잡혔다. 조 회장은 12월 8일 신한금융지주 본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훌륭한 후배들이 (차기 회장 후보군에) 올랐기 때문에 ‘세대교체를 할 때가 됐구나’ 생각했다”고 용퇴 배경을 밝혔다. 조 회장은 “개인적으로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를 통해 (라임펀드 사태에 대해) 주의를 받았지만 누군가는 책임지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도 말했다. 조 회장이 라임펀드 사태 등 사법 리스크를 해소한 상황이라 금융권에서는 용퇴 결정이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일각에서는 조 회장과 신한금융지주 회추위가 교체 기류가 강했던 여권의 의중을 미리 읽고 용퇴 및 회장 교체로 선제 대응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손태승 회장 연임하나
사법 리스크를 일부 안고 있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조 회장의 용퇴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당초 손 회장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 라임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각각 중징계(문책 경고)를 받으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라임펀드 사태 관련 중징계 결정 후 “당사자가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금융업계는 금감원장의 이 말을 두고 “사실상 연임에 나서지 말라는 것 아니냐”는 경고로 해석했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등이 차기 회장 후보로 오르내리며 논란은 증폭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검사 출신 금감원장의 일처리 방식에 금감원 안팎으로 긴장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밝혔다.
DLF는 금리·환율·신용등급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에 투자하는 펀드다. 2019년 하반기 전 세계적으로 채권 금리가 급락하면서 DLF에서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했는데, 금감원은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의 과실이 있었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의 과도한 영업 및 내부 통제 부실로 DLF 불완전판매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손 회장은 금감원으로부터 문책 경고 처분을 받았는데, 이 경우 3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제한돼 사실상 회장 연임이 불가능하다.
다만 손 회장이 12월 15일 DLF 손실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으로부터 받은 중징계 취소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면서 연임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급심이 “현행법상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할 의무’가 아닌 ‘준수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금융사나 임직원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한 가운데 대법원에서도 1·2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손 회장의 경우 라임펀드 사태 관련 중징계 결정에 대한 징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해야 연임 장애물이 완전히 사라진다. 금융권이 손 회장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다. 다만, 연임 목적이 아니더라도 금융권에 취업하려면 라임펀드 사태 관련 징계 취소가 요구되는 만큼 행정소송 제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런 가운데 우리금융지주는 12월 16일 정기 이사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해당 자리에서 손 회장의 연임 건에 대한 논의도 오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관료 출신 회장 후보 등장에 금융계 촉각
금융권에서는 금융지주 회장 인사와 관련해 정부 입김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12월 12일 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에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내정되면서 금융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에서 이 전 실장을 단독 후보로 추천한 상태다. 이 전 실장은 내년 1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해 2년간 NH농협금융을 이끌 예정이다.
1959년생으로 부산 동아고와 서울대 경제학과(78학번)를 졸업한 이 전 실장은 1983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기획재정부 제2차관과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을 지낸 후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NH농협금융은 그간 회장 인사에서 정권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경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2년 출범 이후 관료 출신 인사가 대부분 차기 회장에 임명됐기 때문이다. 신동규(행정고시 14회), 임종룡(행정고시 24회), 김용환(행정고시 23회), 김광수(행정고시 27회) 전임 회장은 모두 관료 출신이다. 손병환 회장은 신충식 초대 회장 이후 첫 NH농협금융 출신 회장이다.
이 전 실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캠프 초기 좌장을 맡으며 정책 설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이후로도 당선인 특별 고문으로 활동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대학 시절부터 시작됐는데 정치권에 따르면 정치 입문 전 윤 대통령은 이 전 실장을 “석준이 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금융권 최고경영자 ‘외부 입김’ 논란은 여타 금융지주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IBK기업은행 역시 윤종원 행장 후임으로 정은보 전 금감원장, 도규상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찬우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 등 전직 관료들이 거론되고 있다. BNK금융지주는 김지완 전 회장이 스스로 물러나면서 차기 회장 선임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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