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장모 씨(32)는 최근 신용대출 2000만 원을 조기에 상환했다. 만기가 돌아온 정기예금과 그동안 모아둔 월급을 끌어 모아 모두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 연 3%에 빌렸던 대출 금리가 6% 후반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장 씨는 “금리가 너무 올라 돈이 생기자마자 대출부터 갚았다”며 “지금은 다른 자산에 투자하는 것보다 빚을 줄이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말했다.
올 연말 기준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이 작년 말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가계대출 잔액이 전년보다 감소한다면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올해 시중금리가 급격히 오르고 주식, 가상화폐 등 금융시장이 얼어붙은 영향으로 분석된다.
1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올해 10월 말 기준 902조6670억 원으로 작년 12월 말(910조149억 원)보다 7조3479억 원 줄어들었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도 포함한 전체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역시 같은 기간 9조6812억 원 감소했다. 만일 올 연말 기준으로도 가계대출 잔액이 전년 대비 줄어든다면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연도별 증감을 확인할 수 있는 2004년부터 18년 만에 처음이다.
5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대출 잔액도 전년 대비 감소했다. 이들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합계는 15일 기준 693조6469억 원으로 지난해 12월 말(709조529억 원)보다 15조4060억 원 감소했다. 신용대출이 121조3504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8조2068억 원 급감한 반면, 전세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은 505조4046억 원으로 1년 새 6조3564억 원 늘었다.
금융권의 가계대출 규모가 올해 이례적으로 줄어든 것은 기준금리가 급등하면서 대출자들의 이자부담이 급격히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지난해 12월 말 2.98~4.72%에서 현재 6.208~7.33%로 두 배 가량으로 치솟았다. 2020년 시작된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이 최근 잠잠해진 것도 대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 자산 시장의 침체로 여윳돈이 있어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이런 상황을 반영해 매년 말 주요 은행들로부터 받아온 ‘내년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를 올해는 제출받지 않기로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이 워낙 부진하다 보니 별도의 대출 관리나 억제 방안이 필요 없어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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